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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발로통, 소나기, 1894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도시는 끝없이 행진할 뿐 결코 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시도 갑자기 쉬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사람들은 하던 일과 가던 길을 멈추고, 비를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펠릭스 발로통(1865∼1925)의 1894년 작 석판화 ‘소나기(L‘Averse)’는 갑작스러운 비를 만난 대도시 파리 시민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파리의 대도시화는 19세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8세기에 대략 50만∼60만 명에 그치던 파리 인구는 1831년에 78만여 명, 그리고 1846년에는 마침내 100만 명에 이른다. 그중 지주, 부르주아, 고위공무원 등으로 이루어진 5%의 상류층이 부의 75.8%를 차지했고, 육체노동자로 이..

미술 2023.06.22

[세한도의 추사 김정희] 매화초옥도, 19세기 전반

당신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 소식을 기대하는가? 눈 덮인 흰 산, 잿빛 하늘, 눈송이 같은 매화, 산속 초옥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친구를 기다리며 피리를 불고 있는 초록빛 옷의 오경석과 화면 왼쪽 하단에 거문고를 메고 벗을 찾아가는 붉은 옷차림의 전기의 모습, 한겨울 깊은 산 속의 초옥에 홀로 거(居)하고 있는 벗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의 '역매인형초옥적중(亦梅仁兄草屋笛中,역매 오경석이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이라는 글귀로 미루어, 초옥에 앉아 있는 인물은 역매 오경석이란 인물이고,홍의(紅衣)의 인물은 전기 자신임을 짐작한다. 둘은 즐겨 그림에 대한 심미안을 나누었던 절친한 친구로서 매화 향기는 경조부박한 외부로부터 이 초옥을 막아줄 것이고 이..

추사 김정희 2023.06.21

[세한도의 추사 김정희] 추사의 초상화, 1857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당신의 죽음이후 후대가 당신을 평한다면 어떻게 쓰여지기를 바라는가? 추사의 김정희의 말년은 어떠했는가? 결국 추사는 63세인 1848년 12월 6일 만 8년 3개월 만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벗인 조인영과 권돈인(權敦仁, 1783~1859), 제자 허련(許鍊, 1809~1892) 등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해배되었다. 이듬해인 1849년 1월 7일에 제주도 대정현 유배지를 떠난 추사는 서울로 돌아와 한강변에 머물며 계속 글씨를 쓰는 등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1851년 7월 22일, 66세의 추사는 진종(眞宗, 1719~1728)의 조천(遷) 문제로 또다시 함경도 북청에 1년여간 유배되었다. 진종은 영조의 큰아들로 일찍 죽어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조천이란 종묘에서 5대..

추사 김정희 2023.06.18

폴고갱 2, 자화상, 1903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은 것은 스스로를 변화 시키지 못한다. 단지 상황이 그것을 바뀌게 할 뿐이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다. 그저 썩어가는 것이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된다. 아이를 크게하는 것은 아이의 내부에 있는 힘이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 세월이 가면 육탈이 되어 뼈만 남게된다. 죽은 것을 바뀌게 하는 것은 내부의 힘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다. 바람과 비와 세월과 미생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부의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죽어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단지 상황과 환경의 희생자일 뿐이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떠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

미술 2023.06.18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무엇에 생명을 걸어본 경험이 있던가? "그래, 내 그림들. 이를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말미암아 내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지." 1890년 7월 27일 프랑스 오베르의 초라한 다락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고흐가 발견되었다.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던 고흐의 품속에는 동생 테오에게 썼던 부치지 못한 편지글이 있었다. 7월 29일 그림에 생명을 걸었던 고흐는 사랑하는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고 썼던 그의 삶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고흐는 평생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으나 현재 우리에게는 고흐의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슬픈 삶을 떠올리게 된다. 이란 그..

고흐 2023.06.16

십자가에서내려지는예수,루벤스, 1612

후회없는 선택은 무엇인가? 플란더스의 개, 파트라슈가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강한 빛이 십자가형으로 영혼이 떠난 예수의 신체에 집중되고, 예수를 염려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큰 대각선의 구도와 함께 처형에 지친 인물과 고뇌에 빠진 인물들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먹구름 가득한 어두운 배경과는 달리 인물들의 표정에는 환한 빛이 가득하다. 루벤스는 어두운 배경 속에서 강렬한 빛을 살린 표현으로 그림을 극대화한다. 예수님의 모습은 절제되고 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먹구름 가득한 어두운 배경 중앙에는 나무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의 중심에 손과 발, 옆구리, 얼굴이 피로 범벅된 예수님의 시신이 있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고 있다. 십자가 ..

미술 2023.06.15

폴고갱 1, 자화상, 1903

우영우는 이야기한다.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흰고래 무리에 속해 지내지만, 그들과는 다른 외뿔고래. 어떠한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우리 모두가 외뿔고래일지도 모른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미술 2023.06.14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1767

프랑스 역사에서 1767년은 사치와 향락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20년쯤후에는 프랑스는 대혁명을 맞이한다. 당시 귀족층들이 즐겼던 미술 작품들은 회화, 조각, 건축 등 전 분야에 걸쳐서 결코 실용적이지 않은 화려함 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미술을 로코코 양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로코코(Rococo)라는 단어가 본래 분수대를 장식하는 미끈한 조약돌 혹은 조개 껍질을 의미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로코코 미술은 금세 사그러지게 됩니다. 일단 대혁명의 숙청 대상이었던 왕실, 귀족들의 미술이었고, 대혁명 당시에 유럽 전역을 휩쓸게 된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사상 때문에 감성을 주제로 한 로코코 미술은 타파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

미술 2023.06.13

레오나르도다빈치, 자화상, 1512

당신은 고독을 아는가? 다빈치가 예순 살에 그린 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한 노인의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소묘 작품이다. 그림 속 화가는 이미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였지만 성취감이나 희열과는 거리가 먼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림 속 깊게 패인 주름은, 삶이란 밖으로 보여지는 성취가 아니라 내면에 침잠된 깨달음의 경지를 터득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깨달음의 경지란, 곧 절대 고독의 경지와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다빈치의 관심사는 외부의 현상과 사물이 아닌 고요하게 흐르는 내면의 세계였던 것이다. 소묘로 된 은 다빈치가 밀라노에서 로마로 이주하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밀라노에서 안주할 수 없게 된 다빈치는 로마로 건너갔지만 교황 레..

미술 2023.06.12

샤갈, 나와 마을, 1911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프랑스의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에 진출한 후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유대인인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23세) 파리에 유학,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는다. 샤갈의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은 파리에서의 1911년 작품이다. "나는 묘화(描畵)의 대상을 러시아에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파리는 그 위에 빛깔을 주었던 것이다"라고 샤갈은 말하였는데 사실에 있어서 파리에서 제작된 이 그림에도 갖가지 작가의 고향의 추억이..

미술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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