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당신의 죽음이후 후대가 당신을 평한다면
어떻게 쓰여지기를 바라는가?
추사의 김정희의 말년은 어떠했는가?
결국 추사는 63세인 1848년 12월 6일 만 8년 3개월 만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벗인 조인영과 권돈인(權敦仁, 1783~1859), 제자 허련(許鍊, 1809~1892) 등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해배되었다. 이듬해인 1849년 1월 7일에 제주도 대정현 유배지를 떠난 추사는 서울로 돌아와 한강변에 머물며 계속 글씨를 쓰는 등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1851년 7월 22일, 66세의 추사는 진종(眞宗, 1719~1728)의 조천(遷) 문제로 또다시 함경도 북청에 1년여간 유배되었다. 진종은 영조의 큰아들로 일찍 죽어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조천이란 종묘에서 5대조가 된 신주를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철종이 즉위한 후 이 문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 벌어졌는데, 외척인 안동김씨는 당연히 진종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권돈인을 비롯한 반외척 세력들은 진종이 철종의 고조(4대)에 해당되니 옮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순원왕후가 외척인 안동김씨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권돈인은 왕실의 예를 함부로 거론했다는 죄목으로 낭천현(현 화천군)에 유배되고, 추사는 그의 배후조정자로 지목되어 또다시 북청에 유배되었던 것이다.
이후 추사는 1856년 10월 10일에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경기도 과천의 과지초당에서 살았다. 그는 말년에 과천에서 4년을 살면서 끊임없이 글씨를 썼는데, 대표적으로 봉은사의 <판전〉(板殿)과 같은 빼어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 작품은 지금도 봉은사에 가면 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인물과 생애 및 업적에 대해선 『철종실록』 7년(1856) 10월 10일조의 졸기에 간단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 참판 김정희가 죽었다.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과 그림, 역사에 깊이 통달했고, 초서와 해서, 전서, 예서에서 참다운 경지를 깨달았다.
때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도 했으나 사람들이 시비하지 못했다. 그의 아우 김명희와 더불어 서로 화목하여 당세의 대가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다고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유배가서 온갖 풍상을 다 겪었으며, 혹은 세상에 쓰임을 당하고 혹은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했으니, 사람들이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하기도 했다.
어떠한가?
추사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고 다방면의 학문과 예술을 접했는데, 특히 글씨에서 탁월한 재능을보였다. 그래서인지 간혹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도 했으나, 워낙 실력이 뛰어나 사람들이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고, 인생의 황금기인 55세에 제주도에 유배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일장일단이 있고, 인생길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인 듯하다.
다만 추사는 그런 온갖 풍상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글씨로일가를 이루고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
어떠한가?
또 당신의 지금은 어떠한가?
이백여년 못미친 과거에 칠십을 살면서 후대에게 '추사'로 각인되는 삶은 왜일까?
그의 칠십동안,
다사다난했던 삶의 굴곡이 어쩌면 그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로인하여 우리는 추사체와 세한도를 만나게 되었고, 이미 죽었으나 후대들의 마음속에 기리며 살아 있음은 아닐까?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추사 김정희 초상, 이한철(李漢喆), 1857년, 131.5 × 57.7㎝, 보물 제547호, 충남 예산 김성기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벗 권돈인이 1857년 이한철을 시켜 관복을 입은 추사의 초상화를 그리게하여 예산 추사 고택 뒤편의 재각에 봉인하였다. 권돈인은 재각의 현판인 추사영실을 직접쓰고 초상화의 찬문을 써서 추사를 기리는 마음을 담았다.
#추사 #김정희
#천리밖에서나는죽고그대는살아서
#추사집안의한글편지와가족사
#정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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