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추사 김정희] 세한도, 1844, 그 후의 이야기

풍선(balloon) 2023. 6. 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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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는 이러한 사람이 있는가?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중국 학계와 교유를 이어가며 왕성한 독서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자 우선 이상적(李尙迪1803~1865)의 역할이 매우 컸다.

당시 조선 중인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역관이자 시인이었던 이상적은 유배지에서 추사의 학문과 예술이 한층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두 번이나 제주 유배지를 방문했으며 추사의 다양한 요구를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세한도>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1843년에 중국에서 <만학집(晩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두 책을 구해 부쳐주었고, 1844년에는 하장령이 편찬한 총 120권 79 책에 달하는 방대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을 사서 보냈다. 심지어 이상적의 아우가 중국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중륜(吳仲倫)의 문집을 구해 보내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 이상적은 추사가 애용했던 고급 붓, 화전지와 먹 등 다양한 물품까지 기꺼이 사서 보냈다. 특히 붓에 대한 추사의 애착은 매우 남달라서 마음에 맞는 붓을 구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여러 문헌에는 소치 허유를 비롯한 제자들이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인 '서수필(鼠鬚筆)' 같은 귀한 붓을 구하려고 고심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책의 가격은 지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주석이 달린 《중용》, 《대학》 합본이 상면포 3~4필 값이었다. 지금 시세로 따져서 200~300만 원에 해당한다.

종이 값도 어마어마하여 <맹자> 한 권에 들어가는 종이 가격만 쳐도 면포 20필 값과 맞먹었다. 책 간행에 들어가는 비용에서 순수한 종이 값은 30% 정도에 해당된다고 볼 때, <사서삼경>과 사대부 가정에 필요한 몇 가지 책을 구비하자면 어지간한 집안은 재산이 거덜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책을 살 수 없는 선비들은 정교한 필체로 필사를 하여 읽거나 팔았다. 입이 딱 벌어지는 솜씨로 쓴 조선 후기의 필사본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비싼 책값이 빚어낸 부산물이다.

부자들은 연행길을 떠나는 사신이나 역관 편에 부탁을 하여 당시로는 첨단의 출판 기술로 만들어진 중국의 책을 샀다. 이때 중국에서 발간된 책은 값도 값이지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이상적이 '천만 리 먼 곳에서 사들이고 여러 해를 걸려 얻은책들은 당시로서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책이었다.

어떠한가?

아마도 이상적의 추사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깊으니 추사가 <세한도>를 그려 선물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세한도〉는 표면적으로는 미완성 작품인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감상자가 이 그림을 보는 관조 속에서 그 빈틈과 미완성이 알차지고 또 완성되어 간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며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충만되어 있다.

추사의 제주 유배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절정의 문인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림, 글, 글씨가 완벽하게 빚어낸 <세한도>의 가치는 1844년 동지사 이하응을 수행한 이상적이 장요손(張曜孫)을 비롯한 청나라 당대 최고의 지식인 16인으로부터 받아온 무려 10m가 넘는 제찬(題贊:그림에 대한 감상을 적은 시)에다가 제자 이상적의 아름다운 의리가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즉,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 유배되어 극단의 고독과 마주했던 추사의 신산한 삶과 세한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 잣나무 같은 제자 우선 이상적의 의리가 이 그림 속에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어떠한가?

추사는 <세한도> 한 쪽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예서로 이렇게 발문(跋文)을 달았다.

“세상의 도도한 물결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따르는데, 마음을 쓰고 힘을 쓰기를 이와 같이 하면서 권세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바다 건너 초췌하게 말라버린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좇듯 하는구나.”

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超,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國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如世之趨權利者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이번에는 이상적이 추사를 위해 이렇게 썼다.

"지기(知己)로서 평생 간직한 유묵은 맑은 난초와 세한 추위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라네."

知己平生存手墨 素心蘭又歲寒松

"공은 유배 시절에 <세한도와 묵란 몇 폭을 그려주시며 아울러 제발을 쓰시고 낙관을 해주시며 과분한 정을 베푸셨다"

公適居時寫寄歲寒圖 及墨蘭諸幅 幷有題識 期過情

어떠한가?

천재의 뒤에는 늘 조력자가 있다.
당신 주변에는 어떠한 조력자가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천재임이 분명하다.

혹시나 주변에 조력자가 없는가?
없다면, 당신이 조력자가 되어 봄은 어떨까?
당신의 조력으로인하여 어떤 천재가 꽃을 필 것 또한 분명하지 않던가?

어떠한가?
당신은 어떠한 사람인가?

#추사 김정희,  ‘세한도’. 가로 70.4㎝, 세로 23.9㎝, 중국(16명)과 한국(4명)의 문인 문사들의 감상평까지 치면 전체길이가 15m.
오세창·이시영 선생의 감상글 뒤에 191㎝ 정도의 여백이, 또 맨 마지막 정인보 선생의 글 다음에 304㎝의 공백이 남아있다. 오세창·이시영 선생과 정인보 선생 사이의 공백(191㎝)은 당대의 문사들에게 글을 받으려 했다가 미완성인 채로 남겼을 가능성이 짙다. 마지막 정인보 선생의 뒤 여백(304㎝)은 후대 문사들을 위해 남겨놓은 ‘댓글 공간’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다산과추사유배를즐기다
#세한도와그후의이야기
#김정희 #이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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