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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10

렘브란트, 베레모와 옷깃을 세운 53세 자화상, 1659

당신 마음에 금이 생겼는가? 자신이 한없이 커지면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세계를 보려하지 않는 법이다. 이로인하여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되는 법이다. 내게 집중되었던 관심의 영역이 넓어져 다른사람들을 향하게 되고, 더 나아가 궁극적인 세계와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마음 상태에서는 타자를 위한 여백은 없게된다. 그러다가 한계상황을 만나 자기성찰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게 되는 법이다. 어떠한가? 그 비참함 혹은 깨짐의 경험은 오히려 은혜가 들어오는 문이 되고는 한다. 갈라진 틈으로 빛은 들어오게 마련이다.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언의 송가 「Anthem」을 인용해본다. 모든 것에는 부서져 갈라진 틈이 있지. 바로 ..

렘브란트 2024.08.19

렘브란트, Self-portrait with Beret, 1655

15세기 르네상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피렌체의 천재들로 인하여 미술사의 부흥을 이루어냈지만, 이후 200여년간은 천재들을 모방하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을 좀 옮겨서 네덜란드, 루벤스보다는 한세기 정도후인 17세기는 렘브란트의 시대다. 그는 미켈란젤로처럼 후세까지 존경받는 천재도 아니었다. 루벤스처럼 달필의 외교사절단도 아니었다. 그는 성공적이고 인기있는 화가였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파산의 비애와 진실로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외로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에 관한 놀라운 기록인 일련의 자화상들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이 모습들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

렘브란트 2024.04.04

자화상(Self-portrait), 렘브란트(Rembrandt), 1655

거울속 당신의 얼굴 그 얼굴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평생에 걸쳐 렘브란트는 자신의 얼굴에 골몰 했었다. 그는 자신을 동양의 왕자로, 방탕한 귀족으로, 사도 바울이 되었다간 예수를 처형하는 형리로, 또는 거리를 전전하는 거지로 분장시켜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자화상과 초상화를 합한 작품이 무려 70여점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초상화를 그린 작가는 미술사에 전례가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자화상이었을까? 단순한 자아도취로 인해 자신을 미화시킨 것이라 보기엔 평생에 걸친 그의 열정이 너무 진지하고도 깊다. 이렇게 많은 자화상과 초상화를 그렸다는 것은 단지 기념비적인 의미를 넘어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벤스와는 달리 비참하고 궁핍한 말년을 보냈던 렘브란트는 더욱더 인간의 내면..

렘브란트 2023.12.19

자화상, 렘브란트, 1659

인생의 내리막길 화가로서 렘브란트의 명성은 그의 생각대로 나날이 높아져 갔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화가의 이후 인생이 탕자 이야기처럼 나타난 것은 가정사에서였다. 사스키아의 부친이 사망한 후 아내 몫의 유산을 제대로 받기 위해 그는 처가 식구들과 소송을 해야 했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의 낭비벽을 비난한 처가 친척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그런 소송전 가운데 아내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연달아 어려서 죽고 말았다. 넷째는 다행히 살았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홉 달 젖먹이 아들 티투스를 두고 떠난 아내를 대신해 집에 들어온 유모 헤르트헤 디르크스는 곧 그의 정부가 되었다. 5년 후에 새로 들어온 가정부 헨드리키에 스토펠스가 새로운 정부가 되자, 헤르트헤는..

렘브란트 2023.08.01

렘브란트, 자화상, 1669

당신에게는 온 맘 다하는 그 무엇의 열망이 있는가? 렘브란트는 영혼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망이란 것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 소망이란 권태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이라는 든든하고도 기민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신뢰의 노끈에 단단히 매어놓은 상상력이 곧 그의 소망이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분이 자유로이 움직이실 수 있게끔 기꺼이 맡겨 드렸다. 미술가가 가장 하기 어려운 자기부정의 결단이 있었고, 그의 눈은 언제나 십자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 결단을 내린 후에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렘브란트는 고난을 체념이나 현실포기로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

렘브란트 2023.05.24

탕자의귀향, 렘브란트, 1669

당신은 누구인가?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처음으로 보았던 그해, 내 영적인 여정은 세가지 단계로 나타났다. 내가 경험했던 첫 번째 단계는 작은아들이 되는 경험이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아버지가 작은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품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는 다정한 모습을 보자 내가 탕자처럼 길잃은, 돌아가고 싶은 아들이자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필요한 사람이라는걸 깊이 깨달았다. 오랜 세월 나는 나를 귀향하는 탕자라고 여겼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를 반겨주실 순간을 기대했다. 내 영적 여정의 두 번째 단계는 어느 날 저녁 렘브란트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도중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큰아들 같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실제로 우리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비롯하여 내가 얼마..

렘브란트 2023.05.22

렘브란트, 어머니, 1655

평범한 사람들, 그들에게 빛은 어디서오는가? 렘브란트, 그의 신산한 삶때문이었을까? 그는 영웅들의 대단한 스토리에 묻힌 평범한 이들 낮은 소리 귀 기울였다. 1650년 이후 렘브란트는 그의 어머니처럼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나이든 여인들의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 내세울 만한 큰일을 한 사람들이 아니다. 시간을 견뎠지만, 대단히 자랑할 것 없는 사람들. 물론 그들의 삶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슬펐으리라. 여인 옆에 창문이나 촛불이 없으니, 그림 속 빛의 기원은 찾을 수 없다. 빛은 인물에게서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어두울때에만 비로소 보이는 약한 빛. 그런 존재들의 나직한 언어들이 그림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진다. 렘브란트의 말년은 비참했다.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

렘브란트 2023.05.17

렘브란트, 켄우드자화상, 1663

나의 첫 유럽여행은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1606~69) 의 자화상을 보기 위해 떠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몇년 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림에 매료되어 어느 잡지에 글을쓴 적이 있었다. 어떤 그림이나 글을 보고 받은 최초의 감동이 채 지워지지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어떻게 좋은가를 논하는 건 조금 위험할지도모른다. 마치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입술을 움직여 말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두서가 없을 터이다. 서점에 가득한, 서로 읽어달라 아우성치는 책더미 속에서 하나의 눈빛이 내게로 왔고, 그 순간 내 속의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 켄우드 자화상(1663~65년)에서 날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 으스스한 시선이었다. 임빠스또(Impasto,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칠하..

렘브란트 2023.04.17

렘브란트, 미소짓는 자화상, 1668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바라본다면? 렘브란트, 차츰 그의 그림에 빠져들면서 그의 그림의 매력은 머리나 손재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그 삶을 움직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한때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쳤을 뿐 아니라 눈물과 애탄 속에서 삶을 지새웠다. 주위의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나중에는 외아들, 사랑하는 아내와도 작별을 고해야했다. 재정은 파탄이 났고 과거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 되어 버렸다. 그의 인생을 비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것은 두려운 어둠을 이기는 완전한 회복의 빛줄기였다. 사랑에 빚진 자임을 아는 순간 그의 눈이 떠졌고 그의 앞에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

렘브란트 2023.04.14

렘브란트, 갈릴리바다에서의 폭풍, 1633

갈릴리 바다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은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로 알려진 그림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구해 주시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이 그들을 구해 주시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그의 가장 극적인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2층 더치룸에 거의 100년 가까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본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다. 바로, 우리를 보고 있는 그림 속 렘브란트. 어떠한가? 우리와 눈이 마주친 렘브란트. 거센 폭풍우 속에서, 오른손으로는 밧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모자를 꾹 누르고있는 그 모습. 그리고 두려움에 쌓인 얼굴. 혹시나 우리의 모습은 아니던가?#렘브란트 #갈릴리바다에서폭풍을만나다

렘브란트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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