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19세기

풍선(balloon) 2023. 7. 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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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법문(不二法門),
당신은 그 아름다움을 아시는가?

조선 말의 대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는 서예에서 추사체를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묵란화에서도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사군자 중에서 특히 난초를 즐겨 그린 이유는 난초를치는 것이 서예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난초 그리기는 서예의 예서와 가깝고 '문자향서권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난초를 치는 법은 또한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초를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식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니, 만약 그러한 법식으로 쓰려면 일필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난초가 사군자 중에서 그리기 어려운 이유는 형태가 너무 단순하여 선 몇 개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난초를 그린 사람은 많아도 뛰어난 걸작이 적은 이유다.

김정희의 걸작 <불이선란不二禪蘭圖〉은 유연한 곡선으로 우아하게 그리던 종래의 난초그림들과 달리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력으로 과격하게 꺾인 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림보다는 글씨의 획에 가까운 운필법으로 그는 난초의 외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세기와 진동하는 향기를 취했다.

이 작품을 〈소심란도〉라고도 부르는데, '소심'이란 마음이 하얗게 비워진 소박한 상태다. 무심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그림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우연히 나온 걸작에 스스로 감동하였는지 상단의 빈 여백을 글로 채우고 있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 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

여기에 나오는 '불이선'은 『유마경』에 나오는 '불이법문'을 지칭한다. 불교의 핵심 교리로서 '불이'는 미와 추, 선과 악, 색과 공, 나와 자연, 너와 나 등의 이원적 분별이 없는 세계다.

『유마경』에서 유마거사는 보살들에게 불이법문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일체법에 대해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좋고 나쁨도 없고,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없고 문답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불이법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유마거사가 침묵 속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문수보살은 “이것이야말로 불이법문에 드는 길입니다."라며 깨달았다. 말하는 순간 잡다한 설명이 붙을 것이고 결국 분별이 이루어져 참된 이해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가?

김정희는 이 작품에서 쾌감을 맛보고 기쁨에 차서 사람들이 경탄하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를 질문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있다. 그러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고 유마거사처럼 그냥 염화미소만 짓겠노라고 혼자 미리 다짐하는 내용이다.

달은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에 있고, 그림의 진의는 언제나 표현된 이미지 너머에 있다. 사실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는 그림이 있던가?

어떠한가?
당신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가?

미와 추는 구별되어 있지 않고 색도 공도 구별되어 있지 않다. 미의 완성은 바로 색과 공이 함께하고 미와 추가 한 몸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자연 속에서 우리는 추함도 발견하고 미도 발견한다. 우리는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호박꽃이 추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의 눈으로 보면 풍부한 호박덩이를 제공하는 호박꽃이 가시만 보여 주는 장미꽃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떠한가?

일체유심(一切唯心)

불이법문의 핵심 가치는 바로 어떻게 보느냐이며, 즉 미가 추가될 수도 있고 추가 미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모든 자연이나 사물이나 인간이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하나이다. 아름다움도 하나다. 그게 본성이다. 이 본성을 느끼면 된다. 그 속에는 어떤 욕망도 물욕도 없다. 있는 그대로이다.

이백여년전 추사 김정희선생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그 마음, 그가 처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지켜내려는 삶으로 살아낸 삶,

이로인하여 우리 후대는 그의 삶을 온전히 선물로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김정희, <불이선란도>,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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