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 184

원피스를 입은 잔사마리, 르누아르, 1877

당신의 봄날, 그 때는 언제인가요?19세기말 프랑스의 파리는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를 보냅니다.지난 기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스 파리가 가장 빛났던 시기였음은 틀림없습니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세상은 파리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세계의 사람들이 파리로 모여들면서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에 없던 풍요를 누렸습니다. 변화의 중심이었던 파리는 매일처럼 들뜬 공기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벨 에포크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소 짓고 들떠 있으며 전반적으로 다스한 색채이죠. 대부분 프랑스의 봄날처럼 여유롭고 밝은 느낌입니다. 르누아르는 자신이 그린 젊은 여배우 장사마리와 가까이 살았고, 파리의 유명 인사였던 그녀를 열 번 ..

미술 2024.04.29

뱃놀이 일행의 오찬, 오귀스트르누아르, 1881

당신은 오늘삶의 무대에서 어떠한 역할인가?황제, 신하,장군, 보병,선생, 학생,이들의 차이는 그저 겉모습에 불과하다. 외관을 파고들어 핵심에 다다르면 누구나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는 배우인 점은 매한가지다. 인생도 이와 같다. 지위와 재산이 개인적 역할에 차이를 만들지만, 그 역할이 내적인 행복이나 즐거움을 좌우하진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이면에는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는 가여운 인간이 숨어 있다. 사람마다 고통과 빈곤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그 본질은 거의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본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처한 상황이나 재산 수준에 따른 역할의 차이는 행복을 좌우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존재하고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성질에 주..

미술 2024.04.27

윌리엄호가스,  “베데스다 연못의 그리스도”(Christ at the Pool of Bethesda), 1736

베데스다,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연못주의 천사가 나타나면 물이 움직이는데,  바로 그때 첫 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 있다고 하더라도 치유를 받을 수 있다.실제로는 그렇게 병이 나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이었고, 그 전설로 인해 수많은 병자가 그 연못 주위에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그 많은 환자 중에 자그마치 38년 동안이나   그 전설을 믿으면서 연못 주위에 머물러 있는 한 사람,그는 혹시 기적이 자기에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살아온 사람임에 분명하다.그 사람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묻는다.“네가 낫고 싶으냐?” “주님,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

미술 2024.04.25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케테 콜비츠, 1903

아이가 죽었다. 어미는 죽은 아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는다. 꾹꾹 숨 막히게 누르고 있던 울음은 이내 터지고 말 것이다. 단장의 슬픔이란 말이 있다. 새끼를 잃고 괴로워하던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식을 잃은 아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자식을 지키지 못한 통탄과 슬픔은 마음의 고통을 넘어 육체의 고통이 된다. 그녀의 온몸이 고통에 꿰뚫린 듯, 한쪽 무릎이 들려 있어 앉아 있어도 넘어질 것 같다.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 굳어가고 있다. 아무리 어미의 체온이 뜨거워도, 아무리 피눈물을 쏟아도 아이를 살릴 수는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은 고통을 뜻하는 '피에타'다. 죽은..

미술 2024.04.17

렘브란트, Self-portrait with Beret, 1655

15세기 르네상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피렌체의 천재들로 인하여 미술사의 부흥을 이루어냈지만, 이후 200여년간은 천재들을 모방하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을 좀 옮겨서 네덜란드, 루벤스보다는 한세기 정도후인 17세기는 렘브란트의 시대다. 그는 미켈란젤로처럼 후세까지 존경받는 천재도 아니었다. 루벤스처럼 달필의 외교사절단도 아니었다. 그는 성공적이고 인기있는 화가였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파산의 비애와 진실로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불굴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외로운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에 관한 놀라운 기록인 일련의 자화상들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이 모습들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

렘브란트 2024.04.04

미켈란젤로, 다비드, 1504

다윗, 미켈란젤로는 전투에 앞선 다윗을 보여 준다. 단단한 대리석이 마치 사람의 살결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벌거벗고 있어 취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5미터가 넘는 크기로 위압감을 준다. 그는 긴장하고 분노해 있다. 언제라도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다윗을 표현했다. 전사 다윗은 정신을 바짝 차린 동시에 차분함을 보이고 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다. 대담무쌍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움직임을 담은 자세로 서 있다. 막 무게 중심을 옮기거나 한 걸음을 내딛은 것처럼 보인다.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인물이 한쪽 다리에 몸무게를 모두 싣고 다른 다리는 앞으로 향한 채 서 있는 것이다. 또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왼팔로 물매를..

미술 2024.03.22

프리마베라, 보티첼리, 1482

당신의 봄은 어느곳에서 오는가? 보티첼리는 '꽃의 도시' 피렌체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15세기에 활동한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이다. 그림 '프리마베라' 속 무대는 신화에 나오는 황금사과가 열린다는 영원한 봄의 정원이고,한 가운데 서 있는 여성은 비너스, 사랑의 여신이자 봄의 상징이며, 모든 예비 신부의 표상이다. 어떻게보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짝을 찾는 건 사랑의 힘 덕분이고, 생명이 그로인하여 탄생한다. 왼쪽으로는 비너스의 수행 여신들인 삼미신(三美神)이 비너스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속살이 비치는 관능적인 하얀 드레스를 입고 원무를 추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이들의 이름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기쁨), 탈리아(Thalia·꽃의 만발), 아글라이아(Aglaia·빛남)라고..

미술 2024.03.08

부귀옥당富貴玉堂, 허달재, 2011

다가오는 봄, 당신은 무엇을 소망하는가? 모란은 부귀(富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화려하게 핀 모란을 부귀한 꽃이라고 불렀다. 부귀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재산이 많고 출세해 명예를 얻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니, 모란은 부귀와 명예를 나타내는 꽃, 부귀화(富貴花)로 명명되는 것이다. 모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나 사랑을 받았고, 특히나 조선 후기부터 왕가의 혼례복이나 병풍, 민화 등에서 부귀를 주제로 사용되었다. 궁궐의 중전(中殿) 뜰, 그 곳에만 심을정도로 귀한 꽃이었다. 어떠한가? 고택의 육중한 대문에 활짝 핀 흰색과 붉은색의 모란, 탐스럽고 귀한 자태 꽃중의 왕 부귀를 상징하는 가장 기품 있는 모란. '부귀옥당(富貴玉堂)'은 집안에 부귀와 영화가 깃들기를 바..

미술 2024.02.29

피터르 브뤼헐, 눈속의 사냥꾼, 1565

예상치못한 폭설,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 플랑드르, 물이 범람하는 저지대란 뜻의 플랑드르는 오늘날 벨기에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부와 프랑스 북부 일대에 걸친 땅, 당시 플랑드르 지역 풍속화를 그린 화가 피터르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은 브뤼헐이 사계절을 주제로 제작한 6개의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폭설이 내린 뒤의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사냥을 끝내고 귀가하는 사냥꾼들과 노동하는 장면, 한겨울 놀이 문화를 담은 그림이다. 브뤼헐이 마흔이던 1565년에 제작한 이 그림에는 겨울 사냥에서 돌아오는 세 명의 사냥꾼과 사냥개들, 그 왼쪽 사선을 따라 아이를 포함해 다섯 명의 사람이 보인다. 그들은 모닥불로 돼지털을 그을리고 있다. 돼지도살이 주로 1월에 벌어지는 연중행사였던 당시 풍습을 감안하면 ..

미술 2024.02.24

장욱진, 동산, 1978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장욱진의 동산, 바람에 흔들리는 짙은 녹색의 포플러나무, 화면에 생기가 느껴진다. 화가 장욱진은 아이나 소, 땅 등의 대상들은 모두 담채로 그렸으면서도 유독 중앙의 나무만큼은 거친 마티에르와 함께 짙은 초록으로 채색하여 나무에서 강하게 발산되는 생명력과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무 아래로 손을 잡은 형제와 그들을 따르는 소와 개는 서정성이 물씬 풍기며,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새의 무리가 흔들리는 나무와 함께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화면 상단의 푸른색 바탕 위로 거꾸로 늘어서 있는 집들은 화면의 공간을 더욱 입체적이고, 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장욱진은 말한다. 가족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준 특별한 존재, 그리고 혼란..

미술 2024.02.1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