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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84

빈센트반고흐, 감자먹는사람들, 1885

늦은 저녁 시간,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는 초라한 집에서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저녁을 먹는 농부들. 고된 농사일로 주름 가득한 얼굴과 거칠어진 손. 그들의 식탁에는 오늘 수확한 감자와 차가 전부인듯 하다. 비록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은 겨우 서로의 얼굴과 음식을 비추어줄 정도이지만, 식탁에 앉은 사람 수만큼 차를 따르고 서로에게 감자를 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소박한 희열과 감사함은 무엇일까? 어떠한가?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넘치는 감사함으로 삶의 풍요를 경험하게 된다면, 일상의 평범함 그리고 일용할 양식(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 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됨을 나는 확신한다. #빈센트반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1.5×114...

고흐 2023.11.19

겨울, 주세페아르침볼도, 1573

당신의 겨울,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하는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인들이 권태를 겪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노인의 무관심이 노인을 그의 계획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해도, 목표의 부재는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든다. 어떠한가? 우리가 삶의 의미의 발견한다면, 그 속에서 삶이 여전히 미완성임을 깨달을 수 있지 않던가? 이때 자각하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회의주의적 태도와는 다르다. 오히려 삶에서 권태를 방지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열망을 품게 만들게 됨이 분명하다. 어떠한가? 당신은 ..

미술 2023.11.17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48

당신은 무엇으로 근심합니까? 엠마오로 돌아가던 두 제자, 글로바(Cleopas)와 마리아(Mary) 부부, 이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약 25리(11km, threescore furlongs) 되는데, 오늘날 “엘 쿠베이베”(El-Qubeibeh)가 성경의 ‘엠마오’(온천, 따듯한 우물)라고 여겨집니다. 부부는 부활의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두 사도가 주님의 무덤을 다녀온 이야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시신을 도난당했다고 생각하고 슬픈 분위기였습니다. 이때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동행하셨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계..

미술 2023.11.05

빈첸초 카무치니, 카이사르의 죽음, 1798

당신의 죽음을 누가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 기원전 44년,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와 원로원 의원들이 휘두른 칼에 23번 찔려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시신은 포로 로마노 한가운데서 화장되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7일 동안이나 로마의 밤하늘에는 긴 꼬리를 드리운 유성이 나타났는데, 로마 시민들은 그것이 카이사르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 믿었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장차 로마 제국을 창건하게 되는 옥타비아누스는 그 유성 아래에서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겨,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우주적인 사건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대권에 뜻을 품은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에 경쟁자였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다음,..

미술 2023.11.04

앙리루소, 잠자는집시, 1897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일에 평생을 바칠 수 있는가? 프랑스 북서 지방의 라발에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난 루소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5살 때 아버지가 파산한 이후로 늘 떠돌아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죠. 고등학교도 중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던 중, 유혹을 참지못하고 돈을 훔치다 걸렸습니다. 이후 그는 형을 줄이기 위해, 군대에가서 7년간 복무하기로 자원했습니다. 루소는 당시 정말 잘되는 일하나 없는 잔인한 운명의 덫에 걸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극심한 고통과 새로운 희망은 동시에 찾아오는 걸까요? 그는 이곳에서 미술과 마주하게 됩니다. 군에서 심심풀이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죠. 덕분에 화가의 꿈도 꾸기 시작했..

미술 2023.11.03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1918

당신은 이런 사랑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디'라고도 불렸던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에서 태어난 유대계 화가입니다. 그의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어머니의 교육관은 뚜렷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모디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모디가 어린 시절 많은 것을보고 배우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그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지독히 가난했던 모디, 그는 세상과 타협하는 대신 방탕한 생활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의 건강은 그때부터 더욱더 나빠지게 됩니다. 1917년에 모디는 콜라루시 미술학교에서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미술학도를 꿈꾸던 집안 좋고 재능 있던 여인, 잔느 에뷔테른, 그 둘은 첫눈에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평생을 같이할 것을..

미술 2023.10.27

이중섭 , 흰소 , 1954

당신은 이중섭의 '흰 소'를 본 적이 있는가? 우직하고 성실한 소, 흰 소는 백의민족이었던 한국을 의미하고, 말라 피골이 상접해 있는 모습은 당시 6.25 전쟁 이후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흰 소는 화가 이중섭의 자화상이자 한국인의 삶과 기상을 상징한다. 태산 같은 힘, 멈춰 있지만 움직이는 것 같고 입과 코가 벌름거리면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캔버스를 박차고 당장 뛰쳐나올 것처럼 역동적이고 박진감이 넘친다. 흰색으로 표현한 굵은 골격과 근육에서 강렬함이 전해지지만 악의가 없는 온순함과 우직함이 배어난다. 화가 이중섭은 평양의 유력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이진태는 상업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중섭은 일본 도쿄..

이중섭 2023.10.22

벨라스케스, 성바울, 1620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어떠한가? 이 가을의 눈물은,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시인의 마음과 닮아서일까? 사랑하는 남편 바렌보임의 떠남을 지켜볼 수밖에없던 첼리스트 자클린의 마음과도 닮았음이라. 예수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스스로 사도라 칭하고, 로마라는 푯대로 달려감이 죽음과 가까와 지는 것임을 알았던 성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눈물이 난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진다. https://youtu.be/HUFyHcrCQN4..

미술 2023.10.18

피리부는소년,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66

이십여년이상 외국생활로 못본 시간동안 늙어진 모습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나의 푸른시절을 아주 좋게 보아준 친구. 한국 유행가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의 전환을 이야기 한다. 젊은날에는 단감을 좋아했다. 홍시에는 눈을 주지 않았다. 어느덧 홍시의 맛을 사랑하게 되었다. 흐물하고 곳곳이 찢어지고 터져서 속살이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특히나 처가댁 감나무에서 따내려진 홍시란 더할나위 없다. 어디 단감만 감이랴? 단감은 단감 나름의 맛이 있고 홍시는 홍시 나름의 맛이 있다. 각자의 맛과 시간이 있는 것이다. 어떠한가? 당신의 머리색이 푸름에서 흼으로 변해갈때 몸의 곳곳이 통증으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낼 그 때, 몸이 좀 아프면 어떤가? 마음 아프지 말거라. 마음 다치지 말거라. 어떠..

미술 2023.10.16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렘브란트, 1660

당신은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제자 베드로, 중앙에 망토를 걸치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이며 그 옆에 애 띤 얼굴의 소녀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이다. 소녀는 촛불을 갑자기 들이대며 당신도 한 패가 아니냐며 따진다. 조용히 숨어 있기를 바랬던 베드로가 원치 않은 여종의 주목으로 당황한다. 돌연한 발각으로 베드로의 심장이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두근거렸다. 베드로의 입술이 타 들어가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베드로가 우울쭈물하자, 소녀는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눅 22:56)고 말한다. 베드로는 이 질문을 용기 있게 인정하거나 재치 있게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재치도 없었으므로 엉겁결에 부인하고 말았다.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눅 2..

미술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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