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어디서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소리를'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세상에 태어나 그런 일은 겪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그리고 합리적인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도록 교육받은 우리라면 그처럼 반응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봤던 제자들조차 그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열두 제자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를 존경하고 따랐던 제자 두 사람이 길을 걸으며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나이가 나타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슬쩍 묻는다. 순진한 그들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된 시신이 사라진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사나이는 모든 예언이 이루어짐을 말했고, 그들과 함께 엠마오로 가서 저녁식사까지 하게 된다.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린 뒤, 그 빵을 떼어줄 때야 비로소 그들은 그 사나이가 부활한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카라바조가 그린 <엠마오의 식사>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두 제자가 예수의 존재를 알아차린 뒤 놀라는 장면이 현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남자는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했을 때처럼 두 팔을 쪽 펼쳐 보이고 있다. 팔을 펼친 모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실제 공간처럼 깊이감이 확연히 느껴진다. 카라바조의 천재적인 단축법이 거의 신기에
달하는 순간이다.
등지고 앉은 남자는 놀라움 때문인지 엉거주춤 막 몸을 일으키려는 듯하다. 왼쪽에 선 남자는 아마도 식당 주인일 것이다. 예수의 뒤로 드리운 그림자는 예수를 향하는 밝은 빛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그의 존재를 강조한다. 이 때문에 그림자는 후광과도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하얀 식탁에 빵과 포도주가 보인다.
식탁끝머리에 떨어질 듯 말 듯한 과일 바구니에는 보는 이에게 현실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하려는 화가의 기발한 의도가 담겨 있다. 바구니속에는 석류와 사과, 무화과와 포도 등이 있다. 석류는 그리스도교
종교화에서 예수의 고통과 수난을 의미한다. 사과는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원죄를, 포도는 포도주와 더불어 예수의 피와 성찬식의 기적을 의미한다.
어떠한가?
이천년전 신앙이 깊어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들 역시 보지않은 것은 믿지 못하였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천년전 엠마오에 있었던 제자였더라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눈으로 보았고
증거되었던 사실,
예수님의 부활.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는가?
요한복음 20장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Messiah,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1601, 캔버스에 유채, 141×196.2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부활절
#카라바조 #엠마오에서의저녁식사
#김영숙 #성화 #그림이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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