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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141

장클루에,프랑수아 1세,1530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왕은 누굴까?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은 루이 14세도, 나폴레옹도 아닌 바로 이 초상화 속 인물인 프랑수아 Fançois 1세. 프랑수아 1세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왕으로 당시 예술의 꽃을 피웠던 이탈리아를 동경하며, 많은 예술가를 프랑스로 초청했다. 그렇게 프랑스로 넘어온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하나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를 위해 근처에 클로 뤼세 Clos Luck 라는 성을 마련해주었고, 다빈치는 이곳에서 3년여를 보내다 생을 마감했다. 이는 현재 〈모나리자〉를 비롯한 다빈치의 작품들이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유이다.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이후..

미술 2023.06.07

펠리페4세, 벨라스케스, 1623

펠리페 4세는 1621년 3월31일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당시 유럽의 패권을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와같은 나라에 빼앗기긴 했지만, 스페인의 위상은 아직도 높았다. 동쪽으로는 필리핀에서 서쪽으로는 남아메리카까지의 거대한 영토의 통치자라 해서 행성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벨라스케스가 태어났던 시기의 스페인은 지기 하루 전의 꽃 같았다. 활짝 피어 있고 향기도 가장 강하지만, 밤이 지나면 곧 시들어 버리고말듯한 꽃. 1492년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시작된 아메리카와의 무역으로 인해 엄청난 재화가 스페인으로 들어왔다. 16세기에는 해상전에서 영국에 패배하..

미술 2023.06.06

스테반의순교, 루벤스, 1616

당신에게는 오늘 어떤 삶의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 예수님, 제 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말하기를 ‘주님, 이 죄를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9-60) 삶의 이유 너에게 생명 있다는 것 삶의 이유 너에게 소망 있다는 것 삶의 이유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 이것이 너의 참된 삶의 이유 내 삶의 발걸음을 통해 또 다른 영혼이 변화되는 증거를 체험하는 영적 인플루언서의 삶을 소망해본다. #스테반의순교, 1616-17,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유화, 172X 109#빌리그래함 #1973년 #한국 #여의도 #전도집회 #50주년 #스데반 #사도행전 #삶의이유 #복음의비밀

미술 2023.06.05

파블로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당신은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가? 피카소는 1900년에 처음 파리로 왔을 때는 스페인적인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파리 시절 로트레크 영향으로 밝은 인상파의 화풍으로 변화했다. 피카소는 20세이던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우울하고 비참한 파리의 하층계급을 주로 그린 '프러시안 블루의 청색시대'를 거쳐, 이후 분홍색을 많이 사용한 '장미 시대(Rose Period)'를 거쳤다. 피카소는 1904년 23세에 파리 몽마르트에 정착했고, 이후1905년부터 파리 화단에서 인정받아, 기욤 아폴리네르와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마티스와도 어울렸다. 1906년경부터는 세잔의 그림과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원시 미술, 특히 고대 이베리아 조각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형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190..

미술 2023.06.03

피카소, 게르니카, 1937

피카소는 1937년 1월에 스페인 공화 정부에게서 파리 엑스포에 출품할 작품을 의뢰받았다. 그런데 당시 4월에 스페인 공화정 정부에 반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 장군의 요청으로 나치가 바스크지방의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비무장 시민들을 상대로 한 만행으로 약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곧 작품의 주제를 바꿔서 한 달만에 끝냈다. 당시 그의 연인이자 피카소의 그림 모델이었던 사진가 도라 마르(Dora Maar, 1907년~1997년)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가로 7.8m, 세로 3.5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작품을 단지 5주 만에 그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그는 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기의 ..

미술 2023.06.01

협롱채춘도(挾籠採春圖), 윤용, 조선 18세기

지금의 우리는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봄기운이 만연하면 아낙네들은 나물을 캐기 위해 들녘으로 나선다. 노동이라기 보다는 나들이에 가까운 것일텐데 이 풍경을 포착하여 화면에 담았다. 인물의 묘사는 조부 윤두서와 부친 윤덕희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법家法을 따랐으나 사실의 전달에 주력했던 조부나 부친의 풍속화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윤용'만의 진전된 회화적 성취가 느껴진다. 여인은 한 손에는 날이 긴 호미를 들고, 그 반대편 옆구리에는 조그만 망태기를 끼고 있다. 흰 누비 수건을 눌러쓴 머리, 말아 올린 저고리 소매, 허리춤에 질러 넣은 치마자락, 무릎까지 걷어올린 속바지와 그 아래로 드러난 튼실한 종아리, 그리고 들메를 한 짚신발 등 전형적인 농촌 아낙네의 모습을 하고있다. 여인은 나물을 캐다 문득 고개..

미술 2023.05.31

절규, 뭉크, 1893

다시 절망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 속에 살아가는 것이고, 잠시나마 절망을 망각하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이 절망이라는 병에 걸리게되면, 아무 생각없이 맹목적으로 살거나, 남들 사는대로 따라 살거나, 자신만의 고집에 매달려 살게끔 된다고ᆢ 그러므로 이러한 절망은 결국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죽음은 모든 것의 최후이기에, 생명이 있는 동안만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은 절대로 모든 것의 최후가 아니며, 죽음은 또한 모든 것을 포함한 영원한 생명..

미술 2023.05.30

윌리엄호가스, 당세풍의결혼, 1744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신가? 인류의 역사에서 '사랑으로 이룬 결혼' 이란 18세기 말경, 로코코시대 유럽에서 시작된 대단히 새로운 현상에 속한다. 돈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게 매료되어 결혼하는 '신선한 과정을 그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1813년 작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사회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애정 어린 만남이 아니라 두 집안이 유무형의 재산을 교환하는 정략적 동맹인 것이 사실이다. 여섯 점의 회화로 이루어진 '당세풍의 결혼' 시리즈는, 18세기 말 영국 사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그림으로 윌리엄 호가스 William Hogarth의 대표작이다.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정략결혼의 폐해를 마치 연극 무대가 펼쳐지듯 흥미진진하게 여섯 점의 그림으로 연결하여 그려 보였다. 'Marriage..

미술 2023.05.29

티치아노베첼리오, 시시포스(Sisyphus), 1548

오늘 당신의 삶은 안녕하신가? 1942년, 카뮈는 "세상에는 진실로 심각한 한 가지 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살입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이외 모든 것들, 세상이 3차원인지 아닌지, 혹은 마음이 9개 혹은 12개 범주가 있는지와 같은 질문은 나중에 등장합니다." 카뮈는 인생의 살만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자살이라고 주장한다.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고 그는 생각했고 만약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면 그 해답은 바로 자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거부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향한 회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부조리한..

미술 2023.05.28

미켈란젤로, 최후의심판, 천지창조, 1537

지금 당신에게는 영원한 세계를 향한 갈급함이 있는가?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 1564년), 그는 죽음을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보았다. 죽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사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기대했었다. 그가 아버지를 여의고 바친 시다. "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나는 죽음을 알았습니다. 그 최후의 날이 하나님 옆에 서는 최초의 날이며 영원의 날인 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최악의 것은 아닙니다. 부자간의 지극한 사랑이 진정으로 하늘에 ..

미술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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