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펠리페4세, 벨라스케스, 1623

풍선(balloon) 2023. 6. 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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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4세는 1621년 3월31일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당시 유럽의 패권을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와같은 나라에 빼앗기긴 했지만, 스페인의 위상은 아직도 높았다.

동쪽으로는 필리핀에서 서쪽으로는 남아메리카까지의 거대한 영토의 통치자라 해서 행성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벨라스케스가 태어났던 시기의 스페인은 지기 하루 전의 꽃 같았다. 활짝 피어 있고 향기도 가장 강하지만,  밤이 지나면 곧 시들어 버리고말듯한 꽃.

1492년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시작된 아메리카와의 무역으로 인해 엄청난 재화가 스페인으로 들어왔다. 16세기에는 해상전에서 영국에 패배하고 네덜란드의 독립 운동을 막지 못하더니 17세기에 이르러서 스페인은 그야말로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해상에서는 이미 주도권을 빼앗겼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어오는 재화는 전쟁 비용과 교회나 수도원 건축에 사용됐다.

그러나 17세기의 스페인은 그럼에도불구하고 문화적 '황금시대'로 불린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도 이 때 사람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초상을 그렸고, 초상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던 젊은 왕은 벨라스케스에게 세비야로 돌아가지 말고 당장 궁정에서 머물고 가족을 마드리드로 불러오라고 했다. 이십대 초반에 일찌감치 궁정화가가 된 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궁정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예술가였으며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중 초기 작품에 해당된다. 젊은 펠리페가 별다른 장식이 없는 검은색 옷을 입고 책상 옆에 서 있다.

어떠한가?

보통 왕을 그릴 때는 이 사람이 왕이라는 표시, 즉 왕관, 왕들이 앉는 등받이가 높고 큰 의자, 비단 커튼, 화려한 장식 등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젊은 벨라스케스는 대담하게도 이 모든 것을 생략했다. 수수한 검은 옷에 실내에도 별다른 장식이 없다.

그가 왕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표시는 딱 두 가지다. 허리춤에 달린 금장식(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과 손에 든 종이다. 이 종이는 왕이 명령을 내리는 서류를 의미한다.

벨라스케스는 왕관이나 홀, 왕가의 문장 등을 굳이 그리지 않아도 충분히 펠리페라는 젊은 왕의 본 모습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왕이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이 서 있는 공간의 배경에 책상이 약간 보이도록 그린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왕이 서 있는 곳에 대한 공간감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배경에 벽이나 가구, 타일 바닥 커튼, 창 등을 그리지 않고도 인물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발을 안정적으로 대고 있는 것처럼 그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떠한가?

화려한 기교와 장식 분위기를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펠리페4세라는 왕 자체에 우리들의 시선이 주목되지 않던가?

벨라스케스가 표현하고자했던 그 뜻이 400여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읽혀짐은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펠리페4세의초상화, 1623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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