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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88

티치아노베첼리오, 시시포스(Sisyphus), 1548

오늘 당신의 삶은 안녕하신가? 1942년, 카뮈는 "세상에는 진실로 심각한 한 가지 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살입니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이외 모든 것들, 세상이 3차원인지 아닌지, 혹은 마음이 9개 혹은 12개 범주가 있는지와 같은 질문은 나중에 등장합니다." 카뮈는 인생의 살만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자살이라고 주장한다.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고 그는 생각했고 만약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면 그 해답은 바로 자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거부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향한 회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부조리한..

미술 2023.05.28

미켈란젤로, 최후의심판, 천지창조, 1537

지금 당신에게는 영원한 세계를 향한 갈급함이 있는가?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 1564년), 그는 죽음을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보았다. 죽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사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기대했었다. 그가 아버지를 여의고 바친 시다. "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나는 죽음을 알았습니다. 그 최후의 날이 하나님 옆에 서는 최초의 날이며 영원의 날인 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최악의 것은 아닙니다. 부자간의 지극한 사랑이 진정으로 하늘에 ..

미술 2023.05.27

알브레히트뒤러, 기도하는 손, 1508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뒤러 형제는 청년 시절 각각 미술과 음악에 뜻을 두었으나 가난으로 인해 뜻을 펼치기 어려웠다. 형제는 먼저 공부할 사람을 동전 뒤집기 내기로 정한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뒷바라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뉘른베르크 아카데미에서 4년 동안 수학했고, 그동안 동생 알베르트는 석탄 광산에서 일했다. 수석으로 공부를 마친 형 알브레히트가 동생을 지원할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동생의 손은 이미 음악을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이 때, 형은 동생의 기도를 듣게 된다. “하느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오나 내 형만은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주옵소서!” 뒤러는 주체할 수..

미술 2023.05.26

들라크루아, 단테의 조각배, 1822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디인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플레기아스의 배를 타고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너가고 있다. 붉은 두건을 쓰고 요동치는 배 위에 간신히 서서 불타오르는 도시를 뒤돌아보며 몸을 떠는 왼쪽 사람이 단테이다. 그 오른쪽에서 단호한 자세로 단테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스틱스강은 지하세계의 문턱을 의미한다. 점액과 같은 진흙으로 가득 찬 강, 분노에 찬 자들은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우고 우울에 찬 자들은 진흙 아래에 잠겨 있다. 지상에서 음란과 오만과 탐욕에 젖어 온갖 죄(罪)를 짓고 지옥으로 떨어진 저주받은 영혼들이 뱃길을 가로막고있다. 조금의 희망도 허락되지 않는 이곳에서 영원히 계속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이 중에는 절망에 몸을 맡기고 가라앉는 영혼이 있는가..

미술 2023.05.25

렘브란트, 자화상, 1669

당신에게는 온 맘 다하는 그 무엇의 열망이 있는가? 렘브란트는 영혼의 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망이란 것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 소망이란 권태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이라는 든든하고도 기민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신뢰의 노끈에 단단히 매어놓은 상상력이 곧 그의 소망이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분이 자유로이 움직이실 수 있게끔 기꺼이 맡겨 드렸다. 미술가가 가장 하기 어려운 자기부정의 결단이 있었고, 그의 눈은 언제나 십자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 결단을 내린 후에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렘브란트는 고난을 체념이나 현실포기로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

렘브란트 2023.05.24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 모슬린 슈미즈 드레스를 입은 마리앙투아네트, 1783

출신이 좀 수상한 라모트 백작부인은 로앙 추기경에게 왕비의 가짜편지를 전달한다. 장관 자리를 노리고 왕비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고있던 추기경은 왕비가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 백작부인은 어느 날 밤 베르사이유 궁 정원에서 왕비를 닮은 한 창녀를 대역으로 삼아 추기경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밀회를 주선하기까지한다. 추기경은 깜빡 속아 넘어가고, 백작부인은 여왕의 자선사업에 쓸 돈이라고 속여 추기경으로부터 여러 차례 돈을 받아 가로채기도 한다.그리고 마침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하고 싶다는 왕비의 가짜 편지를 전달한다. 추기경은 보석상에게 목걸이를 주문하고, 여왕의 친필 사인을 믿은 보석상은 추기경에게 목걸이를 보낸다. 그러나 만기일까지 돈이 입금되지 않자 보석상은 여왕에게 청구서를 보낸다..

미술 2023.05.23

탕자의귀향, 렘브란트, 1669

당신은 누구인가?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처음으로 보았던 그해, 내 영적인 여정은 세가지 단계로 나타났다. 내가 경험했던 첫 번째 단계는 작은아들이 되는 경험이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아버지가 작은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품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는 다정한 모습을 보자 내가 탕자처럼 길잃은, 돌아가고 싶은 아들이자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필요한 사람이라는걸 깊이 깨달았다. 오랜 세월 나는 나를 귀향하는 탕자라고 여겼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를 반겨주실 순간을 기대했다. 내 영적 여정의 두 번째 단계는 어느 날 저녁 렘브란트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도중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큰아들 같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실제로 우리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비롯하여 내가 얼마..

렘브란트 2023.05.22

펠릭스 발로통, 공, 1899

지금 우리네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는 어른과 분명 다른 세계에 산다. 같은 세상인데 그 세상에는 마법의 콩가루라도 뿌려져 있는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신나고 세상은 반짝거린다. 욕조에 들어앉아도 전화기를 쥐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목욕할 때 물속에 떠다니는 실밥 하나로 5분이 즐겁다. 그걸 잡겠다고 물을 휘저으며 좋아 죽는다. 작은 수건이라도 하나 갖고 들이가면 30분도 가능하다. 적셨다가 짰다가 수면에 철퍼덕 때렸다가 얼굴에 덮었다가 머리에 썼다가 붕대처럼 감았다가, 세상에 이렇게 신닐 수가 없다. 욕실 바닥에는 홍수가 나지만 그래도 깔깔대는 아이들 웃음이 욕실의 훈훈한 김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곤 한다. 어른의 웃음과는 달리 아이들 웃음소리에 찬란한 데가 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왠지..

미술 2023.05.21

생 베르나르를 넘는 나폴레옹,자크 루이 다비드, 1801

이미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던 시대, 세상의 변화가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시대의 미술. 생 베르나르를 넘는 나폴레옹 (Le Premier Consul franchissant les Alpes au col du Grand Saint-Bernard)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 1801년 / 캔버스에 유채/231 x 264 cm/루브르 박물관 거칠게 발길질하는 아름다운 백마 위에 올라타 군대를 호령하는 나폴레옹은 1800년 6월, 마렝고 평원에서 펼쳐질 오스트리아 대군과의 결전을 향해 알프스의 준령을 넘고 있다. 대포를 끌고 가는 병사들의 힘겨운 모습에서 험난한 산세를 짐작할 수 있지만,..

미술 2023.05.21

마르크 샤갈, 아버지, 1911

당신은 삼십여년전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붉은 안경을 쓴 듯한 눈가에 슬픔이 드리워진 아버지, 아버지는 청어 장수였다. 악취 속에서 무거운 생선 궤짝을 날랐다. 아버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손은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늘 기도를 하고 늘 일을 하고, 말이 없었다. 어떠한가? 샤갈은 질문했다. 나도 벽에 기대앉아서, 아버지처럼 그렇게 일생을 살 운명일까? 청어가 담긴 궤짝을 운반하며 살까? 샤갈은 말한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내 손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겠다. 하늘과 별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어떠한가? 화가 샤갈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보드라운 손으로 아버지를 그렸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기에, ..

미술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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