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장앙투안바토, 키테라섬으로의순례, 1717

풍선(balloon) 2023. 7. 12. 08:14
728x90
반응형


베르사유 궁전이 완성된 루이14세 통치 후반에 프랑스 귀족들의 관심은 개인사적 영역으로 넘어간다.

프랑스 귀족들과 부자들은 프랑스 왕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취향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미술이나 건축, 패션, 실내 장식 등의 분야에서 로코코 양식이 유행한다.

프랑스에서 발전한 #로코코 미술은 18세기 말까지 유럽 궁전에서 유행했으며, 로코코 미술은 남성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바로크 미술과는 달리 여성적이고 우아하며 경쾌하다는 특징으로 대표적인 로코코 화가로는 #장앙트안바토 를 예로 든다.

지금은 여러 가지 재료로 집이나 방을 장식하지만, 예전에는 무엇으로 집을 장식했을까? 더군다나 큰 저택을 지니고 살았던 귀족들이라면?

귀족들은 분수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을 장식하는 데 조개껍데기와 조약돌을 사용했다. 로코코의 어원이 바로 이 두 단어를 합친 로카이유(rocaille), 그러므로 로코코 미술은 장식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권력을 독점하던 루이 14세가 죽자, 다시 힘을 얻은 귀족들은 자신들만의 예술을 창조했다. 로코코 미술은 직선보다는 휘어지거나 굽은 선을 선호하고, 장식이 정교했다는 점에서 바로크 미술과 비슷하지만 남성적이고 웅장한 바로크 미술과는 달리 로코코 미술은 여성적이고 우아했다.

장 앙투안 바토(1684~1721)는 이 시대 프랑스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당대적이고 세속적인 내용을 주제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표출하는 그림을 주로 남겼다.

"우리와 함께 키테라 섬을 순례하러 가요. 젊은 처녀들은 애인을 얻어서 돌아옵니다."

키테라 섬은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자들의 낙원을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바토는 키테라 섬을 순례한 연인들이 막 섬을 떠나려고 하는 장면을 담았다.

화면 오른쪽을 잘 보면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청동상이 있고, 이 청동상 앞에 앉아 있는 연인은 사랑의 낙원을 떠나는 것이 많이 아쉬운 느낌으로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편 다른 연인들은 사랑의 정령인 에로스들의 배웅을 받으며 황금 곤돌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 그림은 로코코 미술 장르 가운데 하나인 '페트 갈랑트', '우아한 연회'라는 뜻으로, 귀족들이 야외에서 대화하거나 춤을 추며 회합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칭한다.

어떠한가?

바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는 18세기초 로코코 미술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언뜻 보면 감미로운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박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랑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보여지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을 살다보면 알게되는 것처럼말이다.

바토는 페트 갈랑트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다.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는 전원이나 공원을 배경으로 해서 우아한 복장으로 흥겹게 노니는 청년 남녀의 예술적 묘사가 주된 모티브였다.

키테라섬,
비너스가 탄생한 곳이라고 알려진 키테라섬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이었고, 남편감을 찾거나 연인을 구하는 여인들이 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바토의 작품 속 귀족들은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다 잊은 것처럼, 가볍고 반짝이는 붓자국으로 우아함을 부여했다.

이 작품은 37살에 요절했던 화가의 삶에서처럼 사랑의 유희에 동참할 수 없었던, 표면에 겉도는 화려함 속에는 쾌락의 허무함의 느낌을 짙게 깔고 있다.

C'est la vie

https://youtu.be/lkzL7-nZHL0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장앙투안 바토(프랑스) | 1717년캔버스에 유채, 129 * 194cm, 루브르박물관.

#서양미술사 #로코코 #프랑스
#장앙투안바토 #18세기 #1717년
#키테라섬으로의순례
#페트갈랑트 #아프로디테 #에로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