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스스로 귀를 자른 고흐에게 냉담했습니다.
그들에게 고흐는 정신병자일 뿐이었습니다.
고흐를 향한 따가운 시선은 그가 파리를 떠나게 했지요. 동료 화가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그에게 오베르에 사는 정신병 전문 의사 가셰(Paul Gachet, 1828~1909)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 고흐는 가셰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의사인 그가 자신보다 더 우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고흐는 가셰를 신뢰했습니다.
1890년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간, 고흐는 가셰에게 치료를 받으며 1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1890년, 고흐는 가셰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가셰가 이 그림을 달라고 하자, 고흐는 한 점을 다시 그려 선물했습니다. 첫 번째 버전은 고흐가 가지고 있다가 고흐 사후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현재는 일본에 있습니다. 두 번째 버전은 가셰의 유족이 가지고 있다가, 1949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하였습니다.
<가세 박사의 초상>에는 울적해 보이는 가셰의 얼굴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는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턱을 괴고 있습니다. 가셰가 팔을 올린 탁자의 꽃병에 풀이 두 줄기 꽂혀 있습니다. 이 식물은 '디지털리스'로, 당시에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던 약초입니다. 심장 근육의 기능을 높이는 치료제, 정신질환을 완화시키는 치료제 등으로 처방되었습니다. <가셰 박사의 초상> 속 디지털리스는 이 식물이 정신병 치료제로 사용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디지털리스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노란색으로 보이는 '황시증(yellow vision)'이 나타난다는 것인데요.
의사들은 고흐가 디지털리스 부작용으로 황시증을 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흐가 유난히 노란색을 즐겨 썼다고 주장합니다.
일각에서는 고흐가 '망막 부종(retinal edema)'을 앓았다고 말합니다. 망막 부종은 망막의 가는 혈관이 약해지면서 혈관 내 혈액 성분이 빠져나가 생기는 질병입니다. 망막 부종을 앓으면, 눈앞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보이기도 합니다. 고흐가 망막 부종의 후유증으로 〈별이 빛나는 밤〉 속 별무리와 달무리처럼 세상을 흐리게 보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괴로움을 담배와 술로 달랬던 고흐는 1890년 7월 권총 부리를 자신에게 겨누었습니다. 총알은 다행히 심장과 중요 기관을 빗겨나갔지만, 며칠 후 고흐는 상처의 염증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떠한가요?
살아 있는 동안 고흐는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힘든 현실에 몸서리쳤던 그는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종종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고흐를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지금 고흐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지를, 그가 하늘에서 알 수 있을까요?
입추,
가을의 문턱.
혹시나 당신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연민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로인하여 당신은
오늘의 바람의 미세한 변화처럼
누군가의 삶에 자양분이 되고 있음에 분명하다.
당신의 우울을
당신의 다정함을 응원한다.
#빈센트반고흐, <가셰 박사의 초상> (첫 번째 버전), 1890, 캔버스에 유채, 67/53cm, 개인 소장

#반고흐 #가셰박사의초상
#미술관에간해부학자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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