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빈센트반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1887.

풍선(balloon) 2024. 9. 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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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마음을 나눌만한 진정한 그런 사람이 있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를 생각하면 고독, 불안, 안타까움 같은 표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결혼을 한 적 없고, 아이도 없었던 그의 삶에서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동생 테오뿐이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인연이 몇 번쯤 찾아왔는데, 그림 속 주인공인 탕기 영감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고흐는 열여섯에 화방 수습 직원으로 일하며 그림과 첫 인연을 맺고,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며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은 것은 종교였다. 엄격한 청교도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신앙심을 간직했던 고흐는 평신도 전도사가 되어 벨기에의 보리나라는 작은 탄광촌으로 이사했다.

스물일곱의 고흐는 브뤼셀로 보금자리를 옮겨 드디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던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가던 고흐는 이듬해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가 그림에 집중한다.

몇년후 동생 테오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아파트를 구했고, 화가 페르낭 코르몽이 운영하는 화실에 형을 등록시켜주었다. 고흐가 등록한 화실에는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프랑스인이 대부분이었다. 입학 과정도 까다로웠지만, 외국인에 나이도 많고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 없던 고흐가 이 화실에 등록할 수 있었던 데는 유망한 화랑의 부지점장인 테오의 지위가 도움이 됐을 것이다.

동료들과의 분위기에 적응하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오롯이 고흐의 몫이었지만 그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감정을 감추지도 못했다. 석고상이나 모델을 두고 수업할 때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고 거칠게 공격적인 작업 방식을 선보이며 윤곽선을 중요시하던 화실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결과물을 냈다. 그는 이내 수업에 흥미를 잃고 석 달여 만에 발길을 끊는다.

고흐는 수년간 놓친 인연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 아버지와의 불화, 연이은 그의 죽음, 기대했던 <감자 먹는 사람들>의 미미한 반응에 이어 그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듯한 상태였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곳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테오의 소개로 '탕기'라는 화방을 알게 된다.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는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에서 작은 화상을 운영하며, 가난한 화가들이 완성한 그림을 물건으로 바꿔 달라면 기꺼이 해주는 마음씨 좋은 화상이었다. 화가들은 그를 '탕기 영감'이라고 불렀다.

탕기 영감은 인간관계에 다소 어려움을 겪던 고흐와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물감을 사러 탕기 영감의 화방에 가면 다른 화가들의 작업에 관여할 기회가 생겼고, 그들과 몇 시간씩 색채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탕기 영감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분명 가치있는 인상파 화가들과 폴 세잔의 그림을 가게에 걸어둘 정도로 보는 눈이 있던 사람이었다.

어떠한가?

아버지뻘 되는 탕기 영감과 고흐와의 관계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고흐의 욕구를 충족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속사정까지 파고들지 않더라도, 고흐가 그린 <탕기 영감의 초상>에서는 그를 향한 깊은 호의를 느낄 수 있다.

손을 앞으로 모으고 앉은 겸손한 포즈와 온화한 표정은 평소 고흐가 탕기 영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모자에 드리운 초록색 그림자는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배경의 짧은 붓 터치와 원색의 강렬한 보색 대비는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네덜란드 시기에서와 달리 밝은색을 활용하기 시작한 파리에서의 시기는 고흐에게 짧지만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곧 따뜻한 남프랑스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파리를 떠나기 전, 고마운 마음을 담아 탕기 영감의 초상화 세 점을 남겼는데 현재 로댕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이 세 번째 버전이다.

<탕기 영감의 초상>은 고흐가 감정적, 경제적으로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운 도시에서 새롭게 눈 뜬 밝은 색채로 표현한 가장 고흐다운 그림일 것이다.

탕기 영감은 세상을 떠난 1894년까지 이 그림을 소중히 간직했고, 그의 딸이 로댕 미술관에 판매한 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떠한가?
당신에게는 마음을 나눌만한 진정한 그런 사람이 있는가?

탕기영감으로 인하여 고흐는 타인에 대한 호의, 그로인한 평온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음에 분명하다.

어떠한가?

유독 기나긴 더위로 지쳤던 올 해 여름, 당신에게는 이 여름을 극복하고 밝은 표정으로 만나서, 마음을 나눌만한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어쩌면 그들이
당신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곧 다가올 풍성한 한가위에 당신의 마음이 그들과 함께이기를 소망해본다.

#빈센트반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1887년, 캔버스에 유채, 92×75㎝, 로댕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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