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마르크 샤갈, 「신부(The Bride)」, 1950

풍선(balloon) 2025. 7. 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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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샤갈을 좋아하나요?"

'사랑의 화가' 마르크 샤갈.

첫사랑과 결혼해 실제 작품 속에 아내의 모습을 꾸준히 남겼다. <신부>는 샤갈이 자신의 아내가 된 연인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를 그린 것으로, 마치 꿈속에서나 볼 듯한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얀 면사포를 쓰고 부케를 든 신부 벨라는 붉은빛을 띤 스칼렛scarlet 드레스를 입고 있다. 두 사람이 살던 지역에서는 결혼식에 진홍색 드레스를 입는 풍습이 있었다.

신부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신랑은 꿈결 같은 사랑에 취했는지 하늘을 두둥실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왼편에는 고향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염소가 두 사람을 축복하며 첼로 연주를 하고 있고, 그 옆엔 피리를 부는 마을 사람도 보인다. 마을의 정경과 가축들, 그리고 신랑이 쓴 모자는 바로 유대교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서부의 유대인 마을 비텝스크 Vitebsk에서 태어났는데, 평생 그림 속에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샤갈이 스물두 살, 벨라가 열네 살 때였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약속하지만 큰 장애물에 부딪히고 만다.

벨라의 집안이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샤갈의 아버지는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 출신이었다. 반면 벨라의 집안은 보석상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인 데다 아주 부유했다. 게다가 벨라는 마을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딸이었으니 벨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샤갈은 벨라의 부모님에게 그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화가로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낯선곳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유학 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파리는 예술가들이 꿈꾸던 선망의 도시였지만 정작 샤갈에게는 몸과 영혼이 허기지는 도시였다.

에펠탑과 센강, 화려한 카페 거리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들. 파리의 화려한 풍경은 더없이 편안하고 정감 어린 고향의 정경과 더욱 대비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도 샤갈은 고향 비텝스크를 떠난 지 4년 만에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성공리에 치르고 금의환향했다. 그리고 1년 뒤, 축복 속에 벨라와 결혼했다.

어떠한가?
샤갈은 말한다.

벨라가 없었다면 자신의 예술적 성취는 없었다고, 지적이고 예술에 대한 교양이 풍부한 벨라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창작욕을 자극받았기에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샤갈에게 있어 벨라는 사랑하는 연인을 넘어 무한한 영감을 주는 뮤즈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들의 첫 시작을 기억한 샤갈의 자서전을 인용해본다.

벨라: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그의 눈은 마치 하늘처럼 너무나 푸른빛이어서 나는 눈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음을 느꼈어요.

샤갈:

벨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처음 만났음에도 계속 나를 지켜봐온 것 같은 느낌이었죠.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내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게되었답니다.

어떠한가?

당신의 시작을 기억하는가?
당신의 뮤즈는 안녕하신가?

#마르크샤갈, 「신부(The Bride)」, 68x53cm, 1950, 파스텔과 과슈,  일본, 개인소장

#마르크샤갈 #신부
#명화와향수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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