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1888년 12월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귀까지 자르며 이상행동을 보이자 이미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힌 고흐는 결국 아를에서 쫓겨나고, 갈 곳이 마땅치 않던 고흐는 1889년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찾아가 치료를 위해 환자로 입원 중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던 차에 파리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우선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릴게요. 요즘 저희는 이 이야기뿐이랍니다.” 1889년 7월, 요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올 겨울, 아마도 내년 2월쯤, 아이를 낳게 됩니다. 예쁜 아들이길 바라고 있고, 아들이면, 그리고 대부가 되어주신다면, 아이 이름을 빈센트로 지으려 합니다.” 요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딸일 수도 있습니다만 테오와 저는 줄곧 아들일 거라 생각한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빈센트의 첫 반응은 순수한 기쁨이었고 그래서 "정말 멋진 소식"이라고 답한다.
출산은 순조로웠고, 1890년 1월 31일, 정말로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은 빈센트 빌럼이었다. 아기가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고 큰아버지가 된 빈센트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렇게 편지를 쓴다.
"너무나 기뻐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구나."
좌절과 우울의 늪에 빠져 세상과 고립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던 고흐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당장 파리로 달려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고 천사 같이 하얗고 보드라운 어린 빈센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병원을 나갈 수 없었던 고흐는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그려 보내기로 맘먹는다. 보름 후 그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자신의 행복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한다.
「꽃피는 아몬드나무」는 빈센트가 큰아버지로서 조카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어머니 안나에게 설명했듯이, 아기가 잠을 자고 있을 테오와 요의 파리 아파트 침실에 걸기를 바라며 그린 그림이다.
커다란 가지들마다 하얀 아몬드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었다. 프로방스에서는 2월에 아몬드꽃이 피는 것을 보며 다가오는 봄을 느낀다. 생레미 지역이 당시 아몬드나무로 유명했으니, 그 즈음이면 꿀 냄새를 닮은 강렬한 향기를 내뿜는 아몬드나무 숲에서 흰색의 여린 꽃잎들이 무리지어 피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파스텔 톤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몬드 나뭇가지가 마음껏 굽어져 펼쳐있고, 그 위에 순수를 옷 입듯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했다.
어떠한가?
조카의 탄생으로 인한 새로운 가족을 반기는 마음을 담아 화사한 행복을 물감으로 표현한 것이다.
빈센트가 '꽃피는 아몬드나무'를 착상한 것은 아마도 2월 17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날 기온이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따라서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의 구성은 마치 화가가 땅바닥에 누워 울퉁불퉁한 가지들 사이로 위를 올려다본 듯 상당히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적으로 복잡한 배치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윗부분의 가지들과 아랫부분 화면을 가로지르는 가지들은 각기 다른 나무 세 그루의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가?
당신에게도 하늘빛 하늘 위에 싱싱한 꽃잎들이 섬세하게 흩뿌려진 풍경, 130여년전 고흐의 그 마음이 느껴지는가? 삼촌의 마음이 조카 빈센트에게도 전해졌던 것일까?
고흐의 조카는 훗날 그가 가장 애정하는 그림이 '꽃피는 아몬드나무'임을 고백한다.
또한, 그림에 보이는 화사한 꽃잎들은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델란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던 해 그가 보았던 마지막 봄이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지금까지 고흐가 그린 그림들중 가장 끈기 있게 작업한 차분하고 더 안정된붓질로 채색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어떠한가?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빈센트반고흐(Vincent van Gogh), 아몬드나무(Almond Blossom), 1890, 캔버스에 유채, 73.5×92㎝, 반 고흐 미술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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