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 1602

풍선(balloon) 2023. 4. 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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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그는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가면서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어딘지 모르게 왜소해 보이는 예수님 주변에 세 명의 남자가 둘러서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고 있는데, 이 사람이 도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도마의 손을 붙들고,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도록 하셨고 다른 제자들로 예상되는 두 사람이 도마의 뒤에서 도마의 행동과 예수님의 상처를 지켜보고 있다.

카라바조는 실제로 살아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도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졌던 제자들과 같은 거룩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주름투성이의 허름한 사람들이다.

르네상스로 인간중심의 문화가 발전하였고 종교개혁으로 과거 성화의 전통이 깨어졌다고 말하지만, 바로크 시대에도 아직은 성경을 소재로 삼은 그림들, 성화는 거룩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그 틀을 깨버린 것이다.

의심하는 도마라는 그림에서, 이제까지 우리는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다고 말할 때에, 도마 이외의 다른 제자들도 이를 의심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성경에 도마가 의심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도마만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도마는 분명 자신의 의심을 표현하고 행동하고 있고, 다른 제자들의 행동 또한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말했는데, 도마가 손을 넣어보는 행동을 자신들도 궁금했다는 눈짓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니던가?

어떠한가?

요한복음이 기록된 때가 이미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오랜 후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보다는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시기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가?
이천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또 어떠한가?

의심하는 도마처럼 우리는 예수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 특히 육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던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처럼 도마의 뒤편에는 예수님을 이미 만났음에도,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의심을 품고 있는 제자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시는 말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는 말씀은 비단 도마에게만 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의심없이 믿음이 있겠나?

보고 믿은 사람들, 의심하였다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더욱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도마처럼 자신의 의심을 당당히 드러내고 믿음을 얻은 사람들.

어쩌면 믿음의 확신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요한복음 20장)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의심하는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카라바지오,1602년, 유화, 107*146cm

#카라바조 #의심하는도마 #요한복음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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