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케테 콜비츠, 1903

풍선(balloon) 2024. 4. 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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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었다.

어미는 죽은 아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는다. 꾹꾹 숨 막히게 누르고 있던 울음은 이내 터지고 말 것이다. 단장의 슬픔이란 말이 있다. 새끼를 잃고 괴로워하던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식을 잃은 아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자식을 지키지 못한 통탄과 슬픔은 마음의 고통을 넘어 육체의 고통이 된다. 그녀의 온몸이 고통에 꿰뚫린 듯, 한쪽 무릎이 들려 있어 앉아 있어도 넘어질 것 같다.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 굳어가고 있다. 아무리 어미의 체온이 뜨거워도, 아무리 피눈물을 쏟아도 아이를 살릴 수는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은 고통을 뜻하는 '피에타'다. 죽은 자식을 끌어안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성모처럼 감정을 통제할 수있는 인간 어미는 없다. 극단적인 순간에도 우아함과 자제력을 잃지 않은 성모를 보여주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부활이 예정된 초월적인 신(神)의 이야기다.

죽은 인간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죽은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그저 새끼 잃은 짐승일 뿐이다. 케테 콜비츠의 어미는짐승처럼 헐벗고, 거칠고, 격렬하고, 심장이 터질 듯 절절하게울고 있다.

이 어미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

케테 콜비츠는 시대의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강력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인 이슈와 보다 적극적으로 연관이 있다. 케테 콜비츠의 삶 그리고 작품 전체를 살펴보면 'Mitleid'라는 독일어 단어가 떠오른다. 한국어로는'연민', '공감'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 '함께'라는 뜻의'mit'와 '고통하다'라는 뜻인 leiden에서 유래한 것으로, '함께 고통한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연민, 공감은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자 작업의 첫 출발점이었다.

케테 콜비츠는 다른 여성 작가와 다르게 이해심이 뛰어난 가족들의 지지 속에서 예술가가 됐다. 진보적인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외할아버지 율리우스 루프의 영향으로 윤리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오빠 콘라트 슈미트(Conrad Schmidt) 또한 당시 유명한 개혁 사상가로 명성이 높았다. 케테 콜비츠의 남편 카를 콜비츠(Karl Kollwitz)는 온화한 성격에 이상주의적인 휴머니스트 의사로 케테 콜비츠의 예술활동을 적극 지지했다.

부부가 서로 평생을 같은 문제의식을 느꼈던 진정한 반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 내 우호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완강했다. 여자는 유화를 다루는 것보다는 작은 규모의 판화를 다루는 것이 맞다는 아카데미 교수들의 편견에 따라 케테 콜비츠 역시 판화를 전공했다. 유화에 비해 부차적이고 수공예적인 장르로 취급되던 판화가 그녀의 손이 닿자 휴머니즘적인 예술로 격상됐다.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연민, 공감'을 전하는 무기가 됐다.

어떠한가?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울음은 모두를 위한 울음이었다.

그의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초반의 격변을 겪고 있었고, 그녀는 그 아픔의 시대 한복판에 있었다.

케테 콜비츠의 시대는 죽은 자식과 슬픈 부모의 시대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도 죽었고, 전장에서도 죽었다. 케테 콜비츠는 화목한 가정을 이뤘지만, 독일의 비극적인 역사를피할 수 없었다.

케테 부부에게는 한스와 페터 두 아들이 있었다. 1914년 전쟁이 터지고 둘째 아들 페터가 열여덟 살의 나이로 군에 자원한다. 그러나 참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온것은 페터의 전사 통보. 제대로 된 훈련도 없이 총알받이로 젊은이들은 전선에 내몰렸고, 페터 역시 그렇게 희생됐다.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시대는 나쁜 시대다.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세월호 때문에, 천안함 때문에,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꽃다운 나이의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지켜봤다.

새끼를 잃은 짐승,

삶의 일부를 뜯긴 존재 앞에서는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식을 잃으면 부모의 삶은 사라진다. 피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과 고통받는 부모들이 살아가는 슬픈 세상이 되고 만다.

어떠한가?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책임은 어른들 모두의 것이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 그로 인한 위협이 상존한다면 누구나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어떠한가?
대한민국 세월호 십년,
지금은 그 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안전한 세상이 아닌,
운이 좋기를 바라면서 살아야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3), #케테콜비츠 (Kathe Kollwitz.1867- 1945), 동판화 17X 1 cm, 독일 뒤셀돌프(Duesseldorf), 개인소장

#이진숙 #위대한고독의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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