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혜원 신윤복, 미인도, 조선후기

풍선(balloon) 2024. 1. 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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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당신은 무엇으로 설레는가?

혜원蕙園 신윤복,

갓 피어난 초롱꽃 같은 곱고 여린 여인이 다소곳이 서 있다.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이마, 얄따란 눈썹과 갸름한 눈, 마늘쪽 같은 오똑한 코와 앵두 같은 도톰한 입술, 한눈에 봐도 흠잡을 데 없는 미인이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에 얹은 트레머리는 단아한 얼굴에 탐스러움을 더해 주고, 희고 가는 목 뒤로 하늘거리는 몇 가닥 머리칼은 더없이 매혹적이다. 남자주색으로 깃과 고름, 곁마기를 대고 옥색으로 소매 끝동을 댄 삼회장저고리와 한껏 부풀어 오른 쪽빛 치마는 화려하진 않지만 세련되고, 사치스럽진 않지만 고급스럽다. 머리에 묶은 자줏빛 댕기와 청색 매듭이 달린 마노 노리개도 그렇다.

그림 속의 여인은 누구일까?

조선시대에 여염집 여인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생일진대, 혜원과는 어떤 관계일까? 혜원이 마음에 품고 있던 기생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그려 준 그림일까?

복잡미묘한 여인이고
오묘한 미인,

이 그림의 진정한 매력이고 이 여인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은근하고 내밀하다.

한편으로는 퍽 '야한' 그림이지만 그 '야함'을 일견 모순되게 보이는 장치들로 교묘하게 감춰 두었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옷고름을 푸는 손은 뭇 남자들을 홀릴 듯한 교태지만, 건조하리만큼 무미한 표정을 보면 경박한 연정을 품기에는 조심스럽다.

또한 흘러내린 허리끈, 풍성한 치마, 치마 아래로 살포시 내민 버선발에서는 성숙한 여인의 관능미가 물씬 풍기지만,

시선을 위로 돌리면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정한 머릿결과 가녀린 상체에서는 앳된 소녀의 청초함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면 어땠을까? 춘심 가득한 헤픈 여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뼈를 드러내지 않고 뼈에 사무치는 그림이 '미인도'다.

어떠한가?

혜원의 주제는 늘 여인이었으며,
그 여인은 노동이 아닌 사랑과 욕망의 주체로서이다.

그는 여인을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무척 아끼고 깊이 사랑했던 화가였다. 그런 혜원이 온갖 정성을 다해 한 여인의 초상을 그렸다.

청아하고 자존심 강한 여인의 은밀한 자태. 그래서 더 애가 타고 사무친다.

어떠한가?
그녀는 누구일까?

필시 혜원이 연모했던 여인,
하지만 연정을 나누었던
정인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립고 애달프지만 무심한 듯한 여인의 표정은 여인의 것이 아니다. 여인을 향한 혜원의 마음이다. 한동안 눈과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여인을 기어이 그려 냈지만, 차마 건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이지 그녀를 위해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도 마음만은 흡족했던 모양이다.

유려한 필치로내리 쓴 화제가
그 마음을 대신 전해 준다.

盤砂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풀어헤친 화가의 가슴 속에 봄기운 가득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어떠한가?

이런 의미심장한 제사를 쓴 뒤 한참의 공백을 두고 자신의 호인 '혜원蕙園'을 적어 놓았다. 정확히 여인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이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여금 '혜원'을 보게 하였다. 여인은 영원토록 '혜원'만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 혜원의 뜻이었다면 절절하고 애달픈 연민과 사랑이 담긴 그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에 분명하다.

어떠한가?

바야흐로 때는
대한을 뒤로 물리고 입춘을 앞두고 있으니,

다시 찾아 온 봄,

당신은 무엇으로 설레는가?

#혜원 신윤복/미인도/비단에 채색/114.2*45.7/조선후기/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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