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장욱진, 자화상, 1951

풍선(balloon) 2023. 10. 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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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가?
사는 것이 참 어렵지 않은가?

장욱진의 고향은 충청남도 연기군이다. 그의 집안은 대지주인 데다가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가문이었다. 장욱진은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온 가족이 자녀 교육을 위해 경성으로 이사하면서, 그는 경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현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에 다녔다. 최고 수준의 사립 초등학교에서 그때 이미 유화를 접했다고 한다.

장욱진은 공부도 잘했던 터라 당시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립 경성제2고보에 당당히 입학했다. 유영국과 이대원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장욱진의 부친은 상경한 이듬해 장티푸스로 숨졌기 때문에, 장욱진의 서울 생활은 어머니와 엄한 고모의 보호 아래 있었다.

그런데 평소 조용하고 얌전한 성품으로 혼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 장욱진이 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조선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친 일본인 역사 교사에게 항의한 학생들이 부당하게 처벌을 받고, 의자를 드는 벌을 서게 된 때였다. 다른 학생들은 도저히 오랜 시간 벌서기를 버티지 못해 슬그머니 의자를 내려놓았건만, 장욱진은 혼자 끝까지 초인적 고집으로 의자를 들고 있었다. 드디어 선생님이 의자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자, 장욱진은 그 의자를 냅다 일본인 교사 앞에 내리치고 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그림만 그렸다. 이후 장욱진은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에서 유학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또한, 언론인 이관구의 주선으로 국사학자 이병도의 장녀 이순경과 결혼식을 올리고, 대학도 졸업하고, 자녀들도 낳고, 국립박물관이라는 직장도 다녔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장욱진은 지극히 맑고 여리고 섬세한 내면을 가졌다. 보통의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과 위선을 그냥 싫어한 게 아니라 철저하게 증오한 인물이었다. 세상과 타협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웠다고나할까. 그런 인물에게 전쟁이 가져온 거칠고 야만적인 세상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이중섭이 그랬던 것처럼, 장욱진도 그저 무능한 가장일 수밖에 없었다. 처자식이 부산 피란지 큰댁에 얹혀 지내는 동안, 장욱진은 자신을 누일 공간이라도 줄여보려는 심산으로 혼자 야외취침을 하는 날이 많았다.

먹을 게 없어 굶는 대신 술로 허기를 채우고 세상을 잠시 잊는 게 장욱진의 일과가 되었다. "초조와 불안은 나를 괴롭혔고 자신을 자학으로 몰아가게끔 되었으니, 소주병(한되들이)을 들고 용두산을 새벽부터 헤매던 때가 그때이다." " 평생 장욱진을 따라다닌 술과의 사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51년 6·25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장욱진은 아내와 자식들은 부산에 남겨두고, 혼자서 조부모가 살고 있던 고향 충청도에 잠시 머물렀다. 오랜 기간 붓을 들지 못했던 그는, 전쟁 중에도 찬란하게 빛나던 고향 산천을 바라보면서 문득 삶의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자화상>이다.

풍요로운 누런 들녘을 배경으로 전쟁 중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 힘든 서정적인 작품이다.

혼란 속에서도 벼는 자라고 새들은 모두 날아가니, 화가는 계속 길을 걸어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농촌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화가의 프록코트는 그가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이다.

저 멀리서부터 빨간 길이 길게 나 있다. 그 길을 아까부터 걸었다가 이제 화면 앞에 다다른, 앙상한 몸매에 비현실적인 프록코트를 입고 서 있는 인물이 화가 자신이다.

전쟁 중에 태어난 일종의 기적같은 이 작품을 실제로 보면, 가장 감동을 주는 포인트가 의외로 작품의 '크기'에 있다. 세로 14.8센티미터, 가로 10.8센티미터, 딱 손바닥만 한 작고 여린 작품이다.

전쟁 통에 시골에서 캔버스를 구했을 리가 없었을 테니, 그나마 구할 수 있었던 누런 갱지 위에다 그린 나머지, 바람에 누운 노란 벼의 물결 하나 하나가 종이에 스민 흔적조차 생생하다.

어떠한가?

장욱진은 자신의 <자화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에 오색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그냥 고독'은 외롭지만, '완전 고독'은 외롭지가 않다.

어떠한가?

고독은 어찌보면 타인과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개념인데, 그러한 세속적 비교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완전한 고독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완전 고독'은 어쩌면 '자유'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지에 올랐을 때, 인간과는 소통에 불편을 느꼈던 자아가, 자연과는 풍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림을 살펴보면, 들녘은 때맞춰 노랗게 흔들리고, 개와 새는 자신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가?
사는 것이 참 어렵지 않은가?

그 고독의 끝에서 당신 자신과 만난다면,
가장 풍요로움이라는 선물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채, 14.8x10.8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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