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장프랑수아드트로이, 굴오찬, 1735

풍선(balloon) 2023. 4. 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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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의 부를 이루게 된 후에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하게 될까?

왜 사람들은 결핍의 생존문제를 이겨낸 후에는 풍족함을 넘어 사치로 일관하는 것일까?

중세이후 유럽에서는 왕족, 귀족, 영주 같은 지배층과는 달리 모든 물자가 부족하던 피지배층은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다. 그들이 부자를 부러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집과 멋스러운 복장이 아니라 끼니 걱정 없이 언제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피지배층과 달리 지배층은 구하기힘든 최고급 음식 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겨 먹으며 자신들의 우월함과 부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음식재료 중의 하나가 굴이었다. 날것을 즐겨 먹지 않는 유럽인들도 굴만큼은 열광했다.

어떠한가?

그 배경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굳건한 믿음이 작용했다. 굳이 남성의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있었으며 로마인들은 장수의 비결로 굴을 꼽기도 했다. 유럽인들의 굴 사랑은 로마시대 때부터 유명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장어의 내장, 홍학의 혀, 공작새, 플라멩코처럼 일반적으로 구하기 힘든 음식 재료를 즐겨 먹으며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했다. 그중에서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구했던 음식 재료가 바로 굴이었다.

황제의 식탐과 입맛을 채워줄 굴을 구하기 위해 로마의 병사들은 도버해협에서 굴을 채취해 로마로 가져왔다. 모든 길이 로마로 연결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동 수단의 한계가 있었던 당시 여건을 고려하면 신선한 굴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굴을 즐기던 지배층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늘어났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중세 유럽에는 많은 나라가 들어섰다. 지배층 사이의 굴 열풍은 전쟁과 같은 혼란기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그들의 굴 사랑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지배층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는 데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굴이 남성의 정력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유럽의 왕과 귀족, 영주는 굴을 찾았다.

어떠한가?

굴이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겨지면서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움직일 때마다 주요 굴 소비 지역도 달라졌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네덜란드에서 굴이 큰 사랑을 받았다. 굴의 생산지인 도버해협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청어잡이를 통해 축적한 자본을 기반으로 아시아에 진출해 향신료와 차 무역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풍족한 생활은 자연스럽게 사치로 이어졌고, 지배층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비싼 식재료인 굴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17세기 네덜란드는 굴 소비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비슷한 시기 유럽 경제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 프랑스에서도 왕실을 중심으로 굴의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시기는 프랑스의 국력이 절정에 달했던 루이 14세 때였다.

강력한 절대왕정을 구축한 루이 14세는 20여 년에걸쳐 건축한 베르사유궁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성대한 파티를 자주열었고, 루이 14세가 파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았던 귀족들은 왕의 마음을 사기 위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귀족들도 굴을 탐닉한 루이 14세와 같이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굴을 즐기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파리의 인구수가 약 50만명 정도였는데 굴을 파는 상점의 수가 2,000여 개였다는 기록만 보더라도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굴 사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후  나폴레옹은 전투를 치르는 중에도 굴을 먹을 수 있는 여건이라면 삼시 세끼 굴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나폴레옹뿐 아니라 그를 따르던 장군들 역시 굴 대식가였다고 알려졌다.

어떠한가?

지금은 17,18세기 유럽에 비하여, 부가 넘쳐나는 시대이다보니 어느 곳에서나 굴을 비롯한 싱싱한 먹거리가 넘쳐남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풍족함을 넘어서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명품 오픈런에  집착하고, 심지어는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 등 마약류를 투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주변을 살필 때다.

장프랑수아드트로이, 1735년,  ‘굴 오찬’(Luncheon with Oysters).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가 베르사유궁에서 사적 공간으로 쓰던 자신의 식당에 장식할 그림을 의뢰해 제작됐다. 드 트로이는 아예 왕과 귀족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오찬 장면을 그려 선사했다. 왕과 귀족, 하인이 뒤엉킨 그림 속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보이는데, 샴페인병을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다. ‘펑’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가 압력에 밀려 치솟는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향한, 왼쪽 회색 기둥 한가운데 작은 점처럼 찍힌 것이 ‘날아가고 있는’ 코르크 마개다. 캔버스에 유채, 180×126㎝, 프랑스 콩데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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