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반 크람스코이, 톨스토이의 자화상, 1873

풍선(balloon) 2023. 4. 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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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팔십이 넘어 딸만 데리고 상트페테르 3등 열차에 올라탔다. 가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떠나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그야말로 자유로운 여정이었다.

살을 에는 러시아의 추위가 열차 안에 가득했지만, 톨스토이는 행복했다. 따뜻한 집보다 더 평온했다. 하지만 고령의 몸은 추위를 견디기엔 너무 연약했다. 결국 독감에 걸려 랴잔 역과 우랄 역 사이에 있는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 역)라는 자그만 시골 역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역장이 집을 빌려줘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에서 쉬고 날이 밝으면 누이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성명: 톨스토이, 레프 니콜라예프,
나이: 82세
지위: 백작 …

의사가 펜을 멈추며 머뭇거리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쓰든 차이가 있겠소? 12번 열차 승객이라고 적으시오.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서 다 같은 승객일 뿐이오. 다만 어떤 이들은 막 자신의 기차에 오른 반면 나 같은 노인네는 내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병명은 급성폐렴이었다.
고열과 기침, 오한.
1910년 10월 31일 밤이었다.

그렇게 몇일 후 11월 7일 새벽, 주치의가 톨스토이를 깨웠으나 이미 생을 마감한 뒤였다. 전 세계 언론이 그의 죽음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그의 마지막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역장 집으로 모여들었다.

눈발이 날리는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시신을 운구하는 열차가 잠시 멈추는 역 앞 광장에는 캠프를 친 사람들로 넘쳐났다.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모든 활동이 조문으로 정지되어 버렸다. 고향에 도착한 톨스토이의 시신은 아내 소피야와 엄청난 인파의 흐느낌 속에 땅에 묻혔다.

생전에 자주 토로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라 소피야는 오열했다.

"내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날마다 재산이 늘어나는 이 큰 농장, 그런데도 나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존경과 칭송을 받는 이 순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어떠한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있는가?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한다.

"이해하려면 먼저 사랑해라.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그 일이다."

이반 크람스코이 <톨스토이의 초상> 1873, 캔벼스에 유채, 98 x 79.5,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톨스토이
#사랑 #부활
#명작에게사랑을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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