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프리다칼로,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 1926

풍선(balloon) 2023. 5. 1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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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뜻밖에 불행한 사건, 사고(事故,  accident)를 경험하셨습니까?

프리다 칼로는 1907년 7월 6일 멕시코시티교외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헝가리게 독일인 사진가였던 기예르모 칼로cuillermo Kahis, 어머니는 멕시코 원주민인 마틸데 칼데론이 곤살레스 Matilde Calderin y Gunzález 였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네 자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죠.

아버지는 프리다 칼로를 특히 좋아했고 아들처럼 여겨, 그녀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프리다칼로는 1922년 보통 여학생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국립 예비 학교 Escuela Nacional Preparatoria에 들어갑니다. 남학생은 2,000명이 넘었는데 여학생은 불과 35명인 학교였죠.

프리다 칼로는 예쁘고 똑똑했으며, 인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남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죠. 남자 친구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 Neumdro Gomez A였습니다. 그렇게 프리다 칼로는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면 되었고, 졸업 후 자기가 원하던 유능한 의사의 길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1925년 9월 17일 프리다 칼로는 남자 친구 알레 한드로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하교 중이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탄 버스가 마주 오던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이 사고로 현장에서 몇몇은 즉사했고, 프리다 칼로도 전차의 손잡이 봉이 그녀의 왼쪽 옆구리에서 질까지 통과해 반대편으로 뚫고 나오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너무 처참한 부상을 입은 나머지, 의사는 프리다 칼로를 포기했었죠. 그런데 남자친구의 애원으로 프리다 칼로는 수술을 받게 되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장애가 된 이후,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둘을 떼어놓기 위해 아들을 멀리 유럽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렇게 둘은 연인으로서의 인연이 끝나게 됩니다.

어떠한가요?

프리다 칼로는 이 사고로 시작된 고통 이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됩니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은 이런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하얀 살결의 프리다 칼로, 배경이 어두워서 더욱 부각됩니다. 게다가 목이어찌나 긴지. 그리고 그것을 더 강조하려는 듯, 옷은 가슴 아래까지 열어놓았습니다. 하얀 얼굴 기다란 목, 팬 가슴 그리고 아래에 있는 하얀 손이 연결되며 우리를 뽀얀 속살로 유혹합니다.

얼굴을 보면, 머리를 곱게 빗어 윤기가 흐릅니다. 정성을 다해 치장했다는 뜻입니다. 맵시 있게 오른쪽으로 살짝 튼 얼굴에는 프리다칼로답지 않은 수줍음이 보입니다. 지금 프리다 칼로는 알레한드로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가 앞에 있는 듯이 말이죠. 프리다칼로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지만, 이 작품이후에 어떤 그림에도 이처럼 여성적인 눈과 앵두같은 입술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프리다칼로는 몸에 딱 달라붙는 벨벳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옷감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의 굴곡과 유두 자국이 도드라집니다. 눈빛, 표정과 포즈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유혹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배경은 어두운 청색의 밤바다입니다. 아래 2/3 정도는 바다고 위의 1/3은 하늘입니다. 바다에는 물결이 치고, 하늘에는 구름 한 덩이가 있습니다. 이 때까지만해도 프리다 칼로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고, 침대에 누워 여러 미술책을 보면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여러 가지 스타일이 섞여 있고 기본기도 없이 그려졌던 것입니다. 자신의 목은 좋아했던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의 스타일처럼 길게 그렸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아했던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키게 그렸습니다. 실제로 알레한드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자화상을 당신의 보티첼리라고 불렀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유혹하기 위해 그렸던 이 작품은 알레한드로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 프리다 칼로에게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어떠한가요?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자신에게서 자꾸 도망가려는 남자친구 알레한드로가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돌아오길 기원한 것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나는 너무 자주 외롭고, 나를 잘 알기에 그릴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봐달라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쓰듯이 그렸다는 것이죠.

프리다 칼로는 배워서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닙니다. 프리다칼로는 보통 사람들이 평생 겪기 힘든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시련이 천재성에 불을 붙이면서 그녀는 전설의 화가가 되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쉽게 경험하지 못할 고통, 그녀가 선택한 것이 그림을 통한 위로입니다. 그녀는 평생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것은 다 자기를 위로하기 위함이었고 작품을보는 우리도 위로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보는 사람들까지 위로하는 것이죠.

어떠한가요?

혹시나 지금 뜻밖에 불행한 사건, 사고(事故,  accident)를 지나고 있습니까?

이십여년전 교통사고를 ‘만났지만’ 소중한 오늘을 사는, 나는 이지선이라고 고백하며 올해 모교 교수님으로 임용되신 담백한 거인을 알고 있지 않나요?

우리 모두에게 불현듯 다가온 사고는 비록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로인하여 삶의 방향도 바뀔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소망해봅니다.

Viva La Vida

#벨벳드레스를입은자화상(Self-portrait wearing a velvet dress), #프리다칼로(Frida Kahlo),1926, 58 x 79, Museo Frida Kah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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