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일해도 돌아오는 건 굶주림뿐,
세상은 왜 불공평하고 불평등할까?
왜 돈 많은 델프트 시장의 딸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우아하게 산책하러 나갈 때, 거지의 아이는 엄마와 함께 구걸해야 하는 걸까?
불평등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평등한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동물의 세상에서 평등이란 무의미한 개념이다. 사자, 하마, 고릴라 모두 알파 두목만이 암컷과 먹잇감을 독점한다.
불평등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는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 모든 자원을 한 사람이 독점하면 1, 반대로 사회적 자원을 모든 구성원이 동일하게 나눠 가진다면 0으로, 하마, 고릴라 세상은 1에 가까운 지니 계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하던 시대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평등한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더 “도덕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이었을 뿐이다.
사슴 한 마리보다 매머드 한 마리를 잡는 게 당연히 더 좋다. 매머드는 혼자 사냥할 수 없다. 수십 명이 함께 노력해야 거대한 동물을 잡을 수 있다.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가지는 평등한 사회에서만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1만년전 농업의 발전은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사냥과 마찬가지로 농사 역시 대규모 협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협업을 요구하는 농업은 어떻게 사회 불평등의 기원이 된 걸까?
생산성과 결과물의 차이 때문이다. 사냥의 결과물은 빨리 상하고 쉽게 썩는다. 사냥과 채집을 본업으로 삼았던 시대 생산과 소비를 최대한 같은 시기에 해야 하는 이유다. 소비와 생산이 대부분 동시에 일어나기에 부가 누적될 수 없다.
반면 농사는 다르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날 필요 없기에, 지금 소비할 수 없는 것들도 미리 생산할 수 있다. 능력과 상황, 그리고 우연의 결과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하기 시작한 이유다.
한번 시작된 불평등은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커진다. 부와 가난 모두 다음 세대로 상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중간층이 위와 아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회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부유층과 빈곤층을 합친 계수보다 중산층이 더 많아야 사회가 잘 굴러간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능력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이 소유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개인 자유 노력의 결과를 사회가 재분배하는 건 폭력은 아닐까?
스탠퍼드대 역사학자 월터 샤이들(Walter Scheidel)은 인류 역사상 극단적 불평등은 오로지 전쟁, 혁명, 국가 몰락 또는 대규모 전염병만을 통해 해소되었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의 극단적 불평등이 지난 코로나펜데믹을 유발했고, 앞으로 더 광범위한 세계전쟁을 예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이라는 역설적인 이 두 가치를 동시에 그리고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기원전 6~7세기 아테네는 폭발 직전이었다. 관행과 세습을 통해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귀족과는 반대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대부분 시민들.
귀족 출신 솔론(Solon)은 귀족의 권력을 견제하고 시민의 힘을 키워주는 헌법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 후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참주(tyrant)가 되지만, 정권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히피아스는 독재 정치를 시도하다 결국 추방되고 만다.
새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는 고민에 빠진다. 솔론의 헌법개혁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포퓰리즘 모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과 서민, 가진 자와 없는 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은 폭정과 독재를 탄생시켰다.
어떠한가?
지나친 자유는 불평등을 만들지만, 지나친 평등은 자유를 억압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의원제다. 모든 시민이 동시에 모여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에, 대리인을 선출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대리인을 뽑느냐는 점이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새로운 개념의 평등과 자유를 제안한다. 바로 법 앞에서의 평등(isonomia)과 표현의 자유(isegoria)였다.
‘자유’는 모든 것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평등’은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 무질서한 자유가 아닌 개인의 의견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모두가 똑같아야 하는 독재적 평등이 아닌 법 앞에서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이었다.
2500년후 오늘,
그 꿈은 이루어졌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능력만능주의 불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평등주의라는 독재를 오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덕규,자유,1993
https://youtu.be/2MT2UB_ks18
얀 스틴. Jan Steen
델프트 시장과 그의 딸(Adolf and Catharina Croeseron the Oude Delft. 1655. 네덜란드.
#김대식 #아리스토텔레스
#얀 스틴 #델프트 시장과 그의 딸
#하덕규 #자유
몸에 착 감기는 옷감에 세련된 맵시를 보이는 시장과 그의 딸. 반면 구걸하고 있는 모자의 행색에는 추레함이 묻어난다. 어머니의 구멍 난 신발이 강한 대비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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