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툴루즈로트렉, 물랭루즈라굴뤼, 1891

풍선(balloon) 2023. 5. 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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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격동기를 거친 파리에 예술의 찬란함이 깃든 시기. 1889년 파리는 만국박람회를 맞아 에펠탑을 세상에 내놓고,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댄스홀 <물랭 루즈>를 열었다. 그 풍요로운 시대 속에 작은 거인 툴루즈-로트렉이 있었다.

1891년 12월의 어느 날 밤 프랑스 파리 시내의 건물 벽에 붙여진 한 장의 포스터로부터 시작되었다.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이 그린 이 포스터는 오늘날에도 관광 명소로 알려진 파리 몽마르트르(Montmartre)에 있는 카바레(cabaret) ‘물랑 루즈(빨간 풍차)’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물랑 루즈는 캉캉(cancan)춤 공연으로 큰 인기를 모았으므로, 포스터에는 스타 캉캉춤 댄서(dancer)인 ‘라 굴뤼(La Goulue)’와 ‘발랑탱 데조세(Valentin Désossé)’란 남성 댄서가 묘사되었다.

포스터 한가운데서 치마를 들고 한쪽 다리를 뻗고 있는 이가 라 굴뤼이다. 그녀의 본명은 루이즈 베버로, 세탁부 생활과 서커스단 생활을 거쳐 몽마르트의 유명한 춤꾼이 되었다. 그림에는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한 군중의 모습을 배경으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라 굴뤼가 중앙에 보인다. 라 굴뤼의 이 신나는 춤에 맞춰 앞쪽에서 단색조로 처리된 발랑탱이 코믹한 자세로 끼어들고 있다.

그는 노는 것을 좋아하기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독특한 자세를 이 그림에서도 아주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이들 사이에 노란 가스등, 장소와 출연자를 알리는 글자가 배치되어 있다. 포스터로 제작하느라 형태의 선을 살리고 색상을 단순화해 표현한 그림이어서 유화처럼 대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댄스홀의 역동적이고 들뜬 분위기는 그 어떤 그림보다 잘 나타나 있다.

호사스런 실내, 화려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쇼와 거리 곳곳에서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은 쾌락과 유희를 추구했던 당시 파리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서구 문명의 몰락을 예고한 퇴폐와 사치의 문화 이 시대를 흔히 '라 벨르 에포크 La belle époque) 즉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부른다.

19세기의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는 1890년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예술과 음악, 문학이 찬란하게 피어났고, 도시민들의 삶은 갖가지 다양한 오락과 유희로 소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에 누렸던 극도의 사치와 향락은 바로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는 퇴폐와 쇠락의 불길한 전조이기도 했다.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 들은 흘러넘치는 물질 속에서 오히려 불안과 절망,
피로감을 느꼈다.

정신분석학은 이 시기에 급속도로 발달했다. 특히 파리의 정신과의사였던 장 마르탱 샤르코에게는 유럽 전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다. 유명인들로 가득한 그의 환자 리스트에는 물랭루즈의 라굴뤼를 대체한 잔 아브릴도 들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시대적인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알코올중독과 정신이상, 우울증에 시달렸고, 일부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인 자살을 선택했다.

툴루즈-로트레크는 알코올중독자로 요절했고, '로댕의 연인'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했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여생을 정신병원에 수용된 채 보냈으며, 폴 고갱은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의 친구 반 고흐는 자살에 성공했고, '절규'를 남긴 에드바르 뭉크는 음주와 신경증, 우울과 자살 충동에 평생 시달렸다.

자기파괴적인 우울에 시달렸던 이들의 명단을 대자면 끝도 없이 길어진다. 화려한 도시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공포감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현실화됐다. 아름다운 시절은 1914년, 전쟁이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막을 내렸다.

어떠한가?

후대의 사가은 우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언제로 정의할까?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가 주는 쾌락이 24시간 제공되고, 화려한 연예인들이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아이들 최고의 꿈이 연예인이며, 빛나는 조명과 아름다운 건물 사이로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넘쳐나며, 사치스런 물건들이 넘쳐나고 코로나 펜데믹와중에도 명품구매를 위한 줄을 서는 이 때.

찬란한 물질의 홍수 속에서 우울과 불안에 몸을 떨다 낯모르는 정신과 의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시절.

지금이 바로 '라 벨르 에포크' 아닐까?

https://youtu.be/Fnyc-OF-1JE

#명작ㆍ역사를만나다 #유정아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물랭루즈라굴뤼(Moulin Rouge. La Goulue) #벨에포크(La Belle Époque, 1880~1914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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