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귀스타브 카유보트, 오르막길, 1881

풍선(balloon) 2023. 4. 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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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화창한 햇살 아래,
두 남녀가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남녀의 모습 뒤로는 그늘진 전경이, 앞으로는 오르막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남성은 야외 놀이에 적합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팔 동작으로 미루어보아 파이프 담배를 쥐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끝단에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붉은색 양산이다. 밝은 햇살이 펼쳐내는 풍경 속에서 여성의 양산은 화사하게 색감을 뽐낸다. 두 사람은 지금 여유로운 산책중일까?

어떠한가?
두 남녀는 어떤 관계일까?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일 수도, 어느 정도의 부부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존재한다.

대개의 그림 속에서 연인이나 부부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밀착된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르막길> 속 남녀는 다르다.

당시 중산층 이상의 남녀는 일정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것이 관습이자 예절이었다고 한다. 부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간에 거리가 존재하는데도불구하고, 이것이 심리적 장벽이나 단절된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오히려 일정 거리를 두고 걷는 남녀의 모습에서 관계의 여유로움, 익숙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여유로운 뒷모습은 ‘거리두기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어떠한가?

과연 한껏 밀착된 인간관계,
처음부터 마음이 통하는 관계만이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것일까?

지난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는 거리두기라는 말에 익숙해졌음에도, 때때로 ‘거리두기’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낌에 틀림이 없다.

가족, 친구, 동료가 나에게 거리를 둔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몸처럼 밀착된 관계가 이상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적정한 거리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지 않던가?

가끔은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했던 말들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어떠한가?

부부 사이에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었다 생각한 친구나 가족 간에도 종종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 하나로 상대에 대한 존중을 놓아버리기 쉽고, 친밀한 관계로  같은 시간대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 간의 적정선을 자주 잊는다.

친밀한 관계라 해도 완벽히 하나가 될 수는 없음에, 모든 측면에서 하나 되기를 함부로 바라지 않는 것, 가까운 관계라도 지켜야 하는 삶의 영역을 알아두는 것, 배우자나 친구,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 모든 길을 손잡은 상태로 함께 걸을 수 없음을 인지하는 것.

적당한 거리두기로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관계 맺는다면, 오히려 공동체의 삶에서 우리의 삶은 모두에게 존중받을만큼 의미있음에 분명할 것이다.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혹시나 봄나들이중인가?

오늘의 봄날을 만끽하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거리를 좁혔다가 두었다가 서로에게 최고로 존중받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오늘이기를 소망해 본다.

#귀스타브카유보트 ‘오르막 길’, 1881,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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