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체포됐다.
어둠을 뚫고 한 무리 사람들이 횃불과 창을 들고 몰려 왔다. 적의에 들끓는 시끌벅적한 무리의 앞장을 선 자는 노란 옷의 유다다. 유다는 예수를 감싸 안고 입을 맞추려 한다.
유다가 예수를 밀고하기 위해 예수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한다. 유다는 로마군에게 자신이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라고 알려주었다.
예수는 유다를 가만히 응시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꿰뚫어 보는 듯한 예수의 눈빛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조토의 이 벽화는 회화 역사에서 군중 격투 장면의 기원이 되었다. 군중이 격돌하고 창과 장대, 횃불이 부딪치는 장면은 파올로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 수많은 화가가 재연하고 모방했다.
조토는 유다와 예수를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하지 않았다. 두 인물이 화면 중앙에 있었다면 전체적으로 단조롭고 경직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안으며 노란색 망토가 둘러지도록 해서 관람자의 시선이 집중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어떠한가?
배신은 언제나 슬프지 않던가?
애초에 믿음이 없었다면 배신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니, 그 또한 제자였기에ᆢ
횃불이 타오르고 창이 치솟는 폭력적이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그림의 중앙에는 아주 고요하고도 심대한 정신적인 대결이 펼쳐진다.
유다는 예수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하지 못한다. 당시 스승에 대한 제자의 입맞춤은 가장 큰 공경, 가장 깊은 신뢰와 우호의 표현이었다.
유다가 입 맞추려는 순간 공경, 신뢰, 우호 같은 덕목의 행위는 가장 더러운 배신의 행위가 되고 만다. 그림을 압도하는 것은 유다가 입은 노란색이지만, 영혼의 대결에서는 예수가 압승을 거둔다.
예수의 머리에 둘러진 중세적인 후광보다 더 빛나는 것은 형형한 눈빛이다.
슬프다. 믿음이여,
믿음이 흔들려 슬퍼지는 인연은
무엇에 의함일까?
마음일까?
그래서 삶은 고난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의 시작도, 끝도 믿음일 것이다.
만해를 인용해본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조관우 #님은먼곳에
https://youtu.be/xk-_sHOIfIs
*유다의 입맞춤, 조토 디 본도네. 1302~1305년. 200×185cm.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의 프레스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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