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칼레의시민, 로댕, 1889

풍선(balloon) 2024. 5. 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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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1337~1453)은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인 116년 동안의 장기 전쟁이다.

당시 유럽의 최대 와인 생산지이자 잉글랜드령이었던 기옌 지역과 영국 양모 무역의 핵심 지역이었던 플랑드르를 프랑스가 탈환하거나 틀어쥐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일찍부터 모직물 공업이 발달한 플랑드르는 영국에서 양모를 다량으로 수입해 영국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었기에 영국왕 에드워드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은 전체적으로 영국이 주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나 1429년 잔 다르크라는 소녀가 나타나면서, 프랑스가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1453년, 마침내 전쟁은 종식된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칼레시는 한동안 영국의 지배 아래 있다가 그로부터 100년쯤 지난 1558년 비로소 프랑스에 귀속된다.

백년전쟁 과정에서 잉글랜드 도버(Dover)와 가장 가까운 거리였던 프랑스의 해안 도시 칼레는 1347년 다른 해안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상의 이점 때문에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

무려 11개월이나 영국군에 맞서 선방했으나 고대하던 프랑스 왕의 응원군은 오지 않았고, 결국 식량이 떨어진 칼레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해야 했다.

이제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항복을 전하러 간 칼레 시의 사신은 손이 발이 되도록 왕의 자비를 구했으나 에드워드 3세는 조금도 자비를 베풀려 하지 않았다. 1년 가까이 자신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둔 칼레 시민들이 너무
괘씸해 어떻게 해서든 잔인한 보복을 하고 싶었다.

그러자 사신은 더욱간절히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달라고 애걸했으며, 이때 에드워드 3세의 측근 월터 메네이 경이 왕 앞에 나섰다.

"왕이시여, 비록 이들이 1년 가까이 강고하게 저항하면서 우리에게 애를 먹였으나 지금 간절히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정복 이후의 일도 생각하시어 긍휼을 베풀어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좋다. 자비를 베풀겠노라. 모든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지체높은 사람들 가운데 여섯 명만은 예외다. 그것이 나의 조건이다.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닌가? 모든 칼레의 시민들을 대표하여 그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맨발로 나에게 걸어와야 할것이며, 목에는 교수형에 쓸 밧줄을 메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는 내가 성문을 열고 들어갈 때 쓸 열쇠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소식은 곧 파수대 앞에 모인 칼레 시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시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결국 적에게 항복했다는 굴욕감, 그리고 자신들 가운데 여섯 명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누가 시민들을 대표해서 죽으러 갈 것인가 하는 데 쏠렸고, 에드워드의 조건은 지체 높은 시민 여섯 명을 희생시키는 대신 나머지를 살려주겠다는 것이었으므로 에드워드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여섯 명을 선택해야 했다.

어떠한가?

지도층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을 것이며, 가장 공평한 방법은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이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제비뽑기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외스타슈라는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죽으러 가겠소. 자, 우리 자원해서 죽읍시다. 우리는 싸움에 져서 항복했을 뿐이지 우리의 얼과 넋마저 적에게 내어준 것은 아니오. 제비뽑기 같은것을 해서 희생자를 뽑는다면 그 구차함으로 후손들에게도 부끄러울 것이오. 우리 당당하게 죽읍시다. 내가 제일 먼저 죽겠소. 죽을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

외스타슈는 칼레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외스타슈가 이렇듯 제일 먼저 죽겠다고 나서니 다른 지도층 인사들도 다투어 죽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순식간에 여섯 명이 채워졌고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송별하는 시민들을 뒤로하고 시장 광장에서 에드워드의 진지를 향해 나아갔다.

어떠한가?

로댕의 작품은 이 여섯 명이 시장 광장에서 막 발을 떼려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외스타슈,
앞줄의 셋 중 가운데 있는 사람,

로댕은 그를 지도자다운 덕성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군상 전체에서 그는 확실한 중심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긴머리와 수염이 가부장적인 위엄을 돋보이게 하지만, 그 위엄을 뒤로하고 살짝고개를 숙여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에 순응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어떠한가?

그의 체념은 패배자의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초탈함 같은 것이며, 그가 지금 침묵 속에서 애써 자신을 다잡고 추스르려 하는 것은 적들의 비웃음과 조롱에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고 대처할 수 있을까 염려하기 때문인 것이다.

생명을포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무엇일까?

위대한 인간이라면,
명예를 잃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의지를 다지는 외스타슈의 손이 힘없이 늘어져 있다.

얼굴과는 전혀 다른 표정,

외스타슈의 얼굴에 그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면 손에는 그의 심리가 드러나 있는, 평생의 모든 노력과 성취가 이제 덧없이 사라지는 무상감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떠한가?

로댕은 외슈타슈를 지도자다운 덕성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묘사해 주었던 것이다.

긴 머리와 수염이 가부장적인 위엄을 돋보이게 하지만,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에 순응하고 있는,

칼레시민들이 항복 조건을 듣고 절망하는 순간에 그 칼레시에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어떠한가?

승전국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나오는 그 모습에 깊은 슬픔이 함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외스타슈와 같은 사람들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칼레의시민, 로댕, 브론즈, 201<205x195cm, 1889, 칼레 시청사 앞

                             # 외스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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