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죽음을 향해 흐른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삶의 목적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삶의 여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 죽음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불확실성이 우리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 불확실성은 걱정과 불안의 근원이다. 진로가 불확실할 때, 금전적 소득이 불확실할 때, 건강 상태가 불확실할 때 우리는 크게 걱정하며 불안에 떤다.
다른 한편, 불확실성은 마음의 평정 상태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엇이 진실인지 어차피 지금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떠한가?
피할수없는 궁극의 결론, 죽음.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끌리는 대로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않다면, 모든 삶과 지식의 결말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호기심을 가지면서 죽는 그 날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가?
세기말 파리의 문명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고갱에게 타히티는 그의 도피처이기도 했을 것이다.
신비한 푸른 바탕에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을 빌려 삶과 죽음에 대한 서사를 펼치고 있는 폴 고갱,
그는 1897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고독과 빈곤, 지병에 시달리던 고갱이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까지 결심하며 죽기 전에 남기고 싶어 했던 작품을 다음 세대에게 남겼다.
어떠한가?
구십여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마치고 하늘 가시는 처가의 큰어머니를 배웅하고 오는 길,
나는 또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폴고갱, 1897년, 139cm×375cm, 보스턴 미술관
#어떤생각들은나의세계가된다
#인간이알수없는죽음에대하여 #이충녕
#우리는어디서왔으며무엇이며어디로가는
#폴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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