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당신은
어떠한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깊은 슬픔, 때로는 이해하기에도 벅찬,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던가?
1917년 파리 몽파르나스,
가난한 무명화가인 모딜리아니는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싸구려 술에 빠져 있었다. 때론 약에 취해 거리를 배회했다. 자신의 그림은 빵 한덩어리와 술을 사기 위해 헐값에 팔아 치웠다. 모딜리아니의 병적인 방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생활은 가혹할 만큼 궁핍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는데 딸이 태어나면서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게다가 잔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벽에 곰팡이가 잔뜩 낀 아틀리에는 낡은 침대와 캔버스, 굴러다니는 통조림 몇 개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는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때론 피를 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잔은 친정 부모에게 찾아가 구걸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다.
그날 처음으로 모딜리아니가 자화상을 그렸다. 아끼던 갈색 코트를 꺼내 입더니 파란 스카프까지 둘렀다. 그러고는 벽난로에 옆에 세워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더니 이내 빠른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잔이 불룩한 배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뱃속의 아기가 신호를 보내듯 힘찬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짐작하고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고열로 정신이 희미해져갔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이 완성됐다. 모딜리아니는 자화상에 서명을 하고 잔 옆에 몸을 뉘였다. 잔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아기처럼 품에 안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떠한가?
1920년 1월 24일,
모딜리아니는 눈을 감았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이었다.
잔은 차갑게 변한 모딜리아니의 입술에 깊은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연인의 장례식 날 아침 그녀는 아파트 6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한 달 후면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라셰즈에 함께 묻혔다.
서른여섯 그리고 스물둘.
예술의 광기에 잠식당한 화가와 더 이상 헌신할 수 없었던 여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슬픔을 정조준 한다.
완전히 실패한 인생 같은 인생들. 하지만 인생이란 때로는 이정도면 충분하다. 잔의 눈빛은 여전히 텅 비어 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깊은 슬픔.
깊고 차가운 우물처럼 그녀의 눈빛은 끝 모를 심연을 담고 있다. 그 심연을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그녀의 눈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여인의 주위로 까닭 모를 슬픔과 애잔함이 맵돌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가?
혹시나 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떠한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깊은 슬픔, 때로는 이해하기에도 벅찬,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던가?
태풍이 예고된 고즈넉한 가을밤,
귀뚜리 소리가 얄궃다.
#Jeanne Hebuterne with Yellow Sweater, 1918–19, 유화, 100 x 64.7,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모딜리아니
#잔에비테른 #노란스웨터를입은쟌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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