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1894

풍선(balloon) 2023. 8. 1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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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1894년 파리,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연휴,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는 고향인 체코로 돌아가는 대신 화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굳이 가족을 볼 낯도 없었다. 순수회화를 배우겠다며 프랑스까지 유학을 왔지만 공부는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삽화가로서 근근이 생활을 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누구나 알아볼 만한 유명한 작품이 한 점도 없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 르메르시에 기획사의 디자인이 고객에게 퇴짜를 맞았고, 퇴짜를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 최고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그녀는 연극 <지스몽다>의 감독 겸 주연을 맡고 있었는데, 르메르시에가 제작한 <지스몽다> 포스터가 마음에 안 든다며 거절했던 것이다. 개막일은 1895년 1월4일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휴가로 모두 자리를 비운 그때, 무하는 <지스몽다> 포스터 테스트 버전 작업을 맞게되고, 극장에 달려가 <지스몽다> 리허설을 하고 있는 베르나르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마침내 12월30일, 세로로 어마어마하게 긴 포스터, 무하는 무려 ‘실물크기’로 포스터를 제작했던 것이다. 평소에 제작하던 포스터와 비교해 규격과 그림 스타일이 완전히 딴판인 희한한 작품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베르나르는 당장 그와 계약을 맺고 다른 작품도 맡기고 싶어 할 정도로, 무하가 그린 포스터를 마음에 들어 했다.

1895년 새해 첫날 파리의 광고 선전탑에 <지스몽다> 포스터가 나붙었다. 포스터가 붙자마자 곧 파란이 일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포스터의 분위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완전히 홀렸던 것이다. <지스몽다> 포스터를 손에 넣기 위해 포스터 붙이는 사람에게 몰래 돈을 쥐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벽면에 부착돼 있던 포스터를 인적이 뜸한 한밤중에 면도칼로 몰래 떼어내 가져가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어떠한가?

19세기 말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 작업을 통해 알폰스 무하를 처음으로 만난 베르나르는, 이후 연기한 모든 극의 포스터를 무하에게 맡긴다.

무하는 위아래로 긴 실물 크기의 포스터에 베르나르의 모습을 화려하게 담아내었고, 석판화 기술을 이용하여 베르나르의 아름다움을 파리 곳곳으로 전했다.

베르나르가 무하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처럼 무하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 작업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된다.

어떠한가?

'지스몽다'이후 실물크기의 포스터는 백년이지난 지금도 그 모양새를 이어가고있고, 무하의 연작들은 카툰과 엽서의 양식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다.

백여년전, 초라했던 체코의 슬라브인 무하는 생각지못한 기회로 파리의 표준이 되었고, 시대를 뛰어넘는 전설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당신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기억하는가?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주빈 메타, 유자 왕, 그리고 지금의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 또한 우연한 기회로 대타로 시대와 인사하였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어떠한가?

알폰스무하가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는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를 지나고 있었다. 신기술이 쏟아지고, 중산층이 대거 등장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번영의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벨 에포크’를 지나고 있다면 당신 또한 그러한 인연과 인사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새로운 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채색석판화, 1894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파크사우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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