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펠릭스 발로통, 공, 1899

풍선(balloon) 2023. 5. 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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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네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는 어른과 분명 다른 세계에 산다.

같은 세상인데 그 세상에는 마법의 콩가루라도 뿌려져 있는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신나고 세상은 반짝거린다.

욕조에 들어앉아도 전화기를 쥐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목욕할 때 물속에 떠다니는 실밥 하나로 5분이 즐겁다. 그걸 잡겠다고 물을 휘저으며 좋아 죽는다. 작은 수건이라도 하나 갖고 들이가면 30분도 가능하다. 적셨다가 짰다가 수면에 철퍼덕 때렸다가 얼굴에 덮었다가 머리에 썼다가 붕대처럼 감았다가, 세상에 이렇게 신닐 수가 없다.

욕실 바닥에는 홍수가 나지만 그래도 깔깔대는 아이들 웃음이 욕실의 훈훈한 김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곤 한다. 어른의 웃음과는 달리 아이들 웃음소리에 찬란한 데가 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왠지 머리 위로 축복이 부어지는 느낌이다.

어른의 세상에 눈이 오면 감탄사는 짧고 걱정은 길다. 치울 걱정, 미끄러울 걱정, 녹으면서 더러워질 기정. 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에서 눈이란 순수하게 감탄과 웃음만을 유발하는 존재다. 작은 인간들은 그 순간을 한껏 즐길 줄 안다. 책임이란 단어를 몰라도 되는 존재란 이토록 빛이 나는 것이다.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그림이 있다.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의 〈공 Le Ballon)은 사선으로 나뉜 구도를 따라 화폭에는 두 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림자의 세계와 빛의 세계, 고요함의 세계와 움직임의 세계,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 그림 안에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뒤로는 푸른색과 흰색의 긴 옷을 단정히 입은 여성들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팔락거리는 짧은 옷을 입은 한 소녀가 보인다. 어른들이 선 곳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이 어른들은 나무처럼 서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쪽에 조그맣게 배치된 탓에 그 소리가 더더욱 들릴락 말락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와 대비되는 밝은 빛의 공간에 아이가 있다. 타닥타닥, 발자국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생동감. 흰옷에 노란 모자를 써서 더욱 시선을 끄는 아이는 빨간 공을 쫓아 활기차게 달리고 있다. 공이 아이고 아이가 공이다. 공처럼 굴러가는 아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이, 그림자는 점점 아이를 삼키려는 것처럼 보이고 아이는 그로부터 달아나려는 듯도 보인다.

아이는 공 그 자체다.

동그랗고,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통통 튀어가는 발랄한 물건, 발로통은 빨간 공 안에 흰 점을 콕 찍어 반짝이는 빛과 윤기를 표현했다. 저 빨갛고 탐스러운 공처럼 아이들에게선 늘 윤기가 난다.

어떠한가?

윤기를 잃은 중년은 세탁기에 여러 번 돌려진 빨래 같다. 하루하루 색이 바래가는 모습에 거울을 보는 일이 가끔은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의 윤기는 깊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 끝으로도 느낄 수 있다. 탐스럽게 매끈거리는 머릿결과 보드랍고 탄력 있는 볼, 생명의 윤기란 이런 것 아닐까?

외양뿐 아니라 마음에도 윤기가 흐른다. 어른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힘들고 괴롭지만 아이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신비롭고 재미있다.

아이들은 기쁨도 슬픔도 감추지 않는다.

엄마가 낮잠을 자다 일어나면 그 모습을 보고 기뻐 소리 지르고, 단것 그만 먹으라는 소리에 서러워서 2초 만에 엉엉 울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춤인지 체조인지 격투기인지 모를 희한한 춤을 춘다.

작은 인간들은 아주 작은 일로도 환호성을 지른다. 놀이터 가자는 말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아빠가 감자칩을 한 봉지 사왔다고 방방 뛰며 세리머니를 한다. 아이들은 마음속 사랑도 재거나 감추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매 순간을 치열하고 충만하게 산다.

어떠한가?

중년의 어른들보다 어쩌면 그들이 매 순간을 더욱 치열하게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길을 걷다가 또는 삶을 살다가
이 황홀한 시간들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밝은 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공을 따라 힘껏 경쾌하게 뛰어가는 발로통이 그렸던 그 아이에게,

우리의 사랑을 듬뿍담아
마음껏 노래부르고
춤추며 자랄 수 있도록 해 줄 일이다.

그게 우리의 일이다.

*얼굴찌푸리지말아요
https://youtu.be/BEpdZKBsOpI


펠릭스 발로통, <공>, 1899, 오르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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