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던 시대, 세상의 변화가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시대의 미술.
생 베르나르를 넘는 나폴레옹 (Le Premier Consul franchissant les Alpes au col du Grand Saint-Bernard)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 1801년 / 캔버스에 유채/231 x 264 cm/루브르 박물관
거칠게 발길질하는 아름다운 백마 위에 올라타 군대를 호령하는 나폴레옹은 1800년 6월, 마렝고 평원에서 펼쳐질 오스트리아 대군과의 결전을 향해 알프스의 준령을 넘고 있다.
대포를 끌고 가는 병사들의 힘겨운 모습에서 험난한 산세를 짐작할 수 있지만, 붉은 망토 힘차게 휘날리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진군을 명하는 나폴레옹의 당당한 자태 앞에서는 그 어떤 장애물도 하잘것없을 뿐이다.
말발굽 아래 바위에는 '보나파르트'가 선명하게 새겨 있고, 그에 앞서 알프스를 넘었던 전설적인 영웅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프랑크 왕국의 황제 카롤루스 마그누스의 이름은 그 아래 흐릿하게 남아 있다. 그림 한 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승자의 신화를 창조한 화가는 나폴레옹이 가장 아꼈던 다비드였고, 화가는 말고삐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 것으로 프랑스의 새로운 영웅 나폴레옹에 대한 열렬한 충성을 표현했다.
코르시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1796년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으로 프랑스에 연달아 기적 같은 승전보를 보내왔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내전으로 혁명의 이상은 이미 퇴색했고, 공포에 질린 프랑스인들은 역설적으로 강력한 통제를 원하기 시작했다. 이때, 타고난 특권과 지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용맹과 지략으로 역경을 딛고 프랑스를 구원한 청년 나폴레옹은 혁명 정신을 수호할 영웅이자 질서를 되찾아줄 지도자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804년, 프랑스인들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지며 나폴레옹을 황제로 선출했다. 헌법은 도대체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채워졌다. 프랑스 공화국이 '황제'의 지배를 받으며, 권력은 대대로 세습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가져다 준 승리에 도취된 프랑스인들이 잠시 망각하고 있었을지라도, 나폴레옹은 결국 그가 스스로 수호자임을 자처했던 혁명의 이상을 완전히 배반하고, 혁명이 무너뜨렸던 구체제의 권좌를 고스란히 찬탈한 셈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적극활용했다.
어쩌면 역사상, 정치 선전에 이용될 수 있는 문화와 이미지의 힘을 가장 확실히 깨닫고 있었던 인물이 나폴레옹일지도 모른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모든 예술 아카데미를 장악하고 철저한 검열을통해 문학과 미술, 언론과 극장을 완전히 통제했다. 체제 비판적인 서적은 모두 판금 조치되었고, 신문의 발행 수도 극도로 줄었으며, 극장에서는 현대물을 다룰 수 없었다. 그러나 미술만은 예외여서 고전 시대가 아닌 나폴레옹의 업적을 기리는 미술품들이 거대한 규모로 대량생산되었다.
지금 파리를 상징하는 장엄한 규모의 에투알 개선문과 방돔 광장의 기념탑이 바로 나폴레옹 시대의 소산이다.
평민으로 시작하여 최고의 권좌에 오른 나폴레옹은 그 이전의 어떤 왕보다도 더한 위엄과 장엄함을 갖춘 공식 행사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이상 세속적인 승인이 아니라 신성한 권위였다.
어떠한가?
나폴레옹이 과연 강풍이 몰아치는 험준한 알프스를 백마를 타고 넘는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는 사실 농부가 이끄는 노새를 타고 힘겹게 협곡을 넘었다. 확실히 그의 군대는 불시에 오스트리아군의 배후를 습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초 오스트리아 대군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기세에 눌려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진군한 드세장군으로 인하여 신승을 거두었고, 금상첨화로 드세가 전사함에 따라 전승의 공을 독차지하게된다.
그러나 이런 궁색한 현실은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으로 그려졌기에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림 속의 장군은 틀림없이 나폴레옹이 맞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닐 뿐이다.
삶이 그렇지 않던가?
보여지는 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들 보여지는 것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에너지를 쏟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최선을 다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하지 않을까?
동주 선생의 서시序詩에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것이 인생이다.
https://youtu.be/ETq0rVrz-KQ
#명작역사를만나다
#신고전주의에서후기인상주의까지
#명작으로본사회사 #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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