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이중섭,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1943

풍선(balloon) 2025. 10. 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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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라 한가위,
당신은 누구와 함께의 시간을 기대하는가?

나의 상냥하고 소중한 사람,
가슴 가득한 단 하나의 사람
나의 소중한 아내, 나의 남덕 군

편지 고마웠소. 아이들하고 열심히 사는 생활 눈에 보이듯이 써보내어줘 바로 곁에서 그대들을 느끼고 기쁨으로 꽉 차 있소.

교회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태현, 태성이 둘이 다 나가 노래와 유희를 한다니 큰 즐거움이겠구려. 아빠는 크리스마스까지는 갈 수가 없어 매우 섭섭하오. 태현이 산수를 100점 받아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을 만큼………… 당신의 정성어린 노력에 감사하오 태성이의 개구쟁이 짓은 아빠가 가면 염려없어요. 의젓하고 늠름한 아이로 만들어 보이겠소.

뜨개질로 어깨가 아플 정도까지 무리는 하지 말아요. 아고리가 가서 아픈 어깨를 두드리고 주물러서 풀어 주겠소. 손꼽아 기다려 주시오. 덕분에 아고리는 더욱 왕성하게 제작중이오 이제 한 열흘이면 되오...……… 친구의 사정으로 지금 있는 집을 팔았기 때문에 2, 3일 중에 아고리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소. 이사를 하면 곧 편지를 낼테니, 알리기까지는 편지를 내지 말고 기다려 주시오. 도쿄도 꽤나 추울게요. 몸조심 하고 피곤해서 감기 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상냥한 사람이여.
조금만 더 서로 참읍시다. 나중에 둘이 함께 지난날의 추억담을 나눕시다.

그럼 아고리는 작품전의 좋은 성과를 위해서 힘껏 노력하겠소. 건강하게 밝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 주구려. 아스파라가스 군은 요즘 추워하지 않나요? 뜨겁고 긴 긴 포옹과 뽀뽀를 보내오 상냥하게 받아 주시오

중섭

<추신>

구상형의 누이동생의 졸업증명서는 잘 받았다고 알려 왔구려. 내일(10월 29일) 편지를 내려고 생각해 보았지만...... 오늘 12시 지나 텔레핀유가 떨어져서 거리로 나갔는데, 11월 1일부터 한국전이 개최된다고 내가 작년부터 금년 봄까지 있었던 통영의 공예가들이 출품 때문에 상경했기에 오늘 그들을 만나 오랜만에 지난 겨울의 일, 통영의 소식 등을 주고받으며 즐겼소

그분들은 나를 염려하여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고 양피 잠바를 선물해 주었다오. 약간 추워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최근 닷새 동안은 아주 따뜻하여 좋았지만 이제부터는 얼마간 춥더라도 걱정없게 되었소. 문제가 없겠소. 기뻐해 주시오.

나의 소중한, 끝없이 살뜰한 나만의 천사여.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나에게 있어서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찮은 일도 당신에게 알리지 않고는 못 배기오. 약간 춥더라도 아니 호되게 춥더라도 하나도 걱정이 없소 안심하기 바라오.

구형의 노력으로 언제든 소품전이 끝나는 대로 당신들 곁으로 갈 수 있고...... 그래서 살뜰한 남덕 군의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찬 아고리 화공은 더욱더 힘을 내어 열심히 제작하고 있으니..... 안정과 건강에 유의하고 차분히 발가락 군과 얘기를 나누면서 기다려 주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일 안에 당신의 얼굴 사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진, 아스파라가스(나만의)군의 사진 세 포즈쯤 지급으로 보내 주기 바라오. 연달아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지요. 5, 6일에 한 통은 꼭 편지를 주시오.

(잊지 말구요) ・・・・・・
그럼 몸 성히.......

중섭

어떠한가?

1916년부터 1956년, 40년의 세월은 한 여인을 사랑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직한 화공이 되어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홀로 방황하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암흑의 시대에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처절하게 살다간 화가 이중섭, 그는 한 아내의 남편이었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무엇보다도 정직한 화공이었다.

아름다운 그 시절, 그는 숙명처럼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폭풍우 같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극적인 생애가 눈부시게 부각되었을 때 진정한 예술세계는 생애의 뒷면에 그림자처럼 가려져 버리고 만다.

일제 강점기 암흑시대를 거쳐 전쟁으로 이어진 끊임없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화가 이중섭.

어떠한가?

살아서는 궁핍했으나 죽어서는 신화가 된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1916년 4월 10일 평남 평원군에서 이희주와 안악 이씨 사이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본에 유학하여 자유주의적인 분위기의 사립문화학원 미술과에 다녔다. 여기에서 2년 후배인 운명의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다.

1945년 마사코가 원산으로 와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마사코란 이름을 남덕으로 바꾸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며 이듬해에는 제주도 서귀포로 거처를 옮겼다. 1952년 가난을 견디지 못해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의 친정으로 떠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다.

1956년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으며 음식을 거부하다가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으며, 9월 6일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향년 41세.

사흘 뒤 이 사실을 안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어떠한가?

추석이라 한가위,

모두들 가족들과의 왕래를 기대하며 설레임과 분주함으로 바쁜 모양새이지만, 아마도 이 도시에는 그렇지못한 많은 사람들, 또 한 명의 이중섭선생같은 분이 계실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지는 이 때,
함께하지 못한다고해서 마음까지 없겠는가?

그들,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같이할 수 없어 비록 마음만일지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기원해본다.

#이중섭,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1943, 종이에 유채, 41.8×30.5, 국립현대미술관.

#오늘그림
#이중섭李仲燮
#그대에게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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