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한스홀바인, <대사들>, 1533

풍선(balloon) 2024. 7. 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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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어떠한가?

당신에게
그 운명,

죽음이 찾아와 인사한다면,

삶은 죽음을 향한 여정,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에 하루하루 더 가까워져 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곧 삶을 생각한다는 것이고,

비록 유한하다는 슬픔이
우리들을 서럽게 할지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온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

#한스홀바인, <대사들>, The Ambassadors By Hans Holbein the Younger 1533년, 오크 패널에 유채, 209.5X207cm 영국 런던내셔널갤러리

#서시 #한강
#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문학과지성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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