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백자 달항아리의
그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고려 말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틈타 이성계는 새 왕조 조선을 개국한다. 불교의 폐해를 지켜보았던 실력자 정도전을 앞세운 신진사림은 태조를 도와 조선을 엄격한 유교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새 나라 조선이 들어서고 이후 500년이나 역사를 이어나갔다.
그러한 정신과 이상을 담은 그릇이 바로 조선 백자이다. 유교의 차가운 기본 틀과 선비 세력의 엄격한 규범이 조화를 이루었다. 고려청자와는 바탕이 다르고 지향하는 목표에도 차이가 있었다.
물론 도자기의 배경을 살펴보면, 원말명초의 중국 청화백자가 조선백자의 고향이라고 말해야 자연스럽다. 조선에서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았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선백자는 독자적인 길로 뻗어나갔다. 그중의 한 갈래를 우리는 순백자에서 찾을 수 있고, 그 결정판으로 달항아리를 꼽는다. 조선 초기 청화백자는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 백자에서는 조선식의 순백자를 찾아볼 수 없고 달항아리는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달항아리는 조선 선비문화의 자존심이다.
도자기야말로 삼국의 정서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중국의 도자기는 숨이 벅차다. 조선 후기로 가서야 만들어지는 일본 도자기는 기교를 가득 담고 있다. 중국은 완벽주의, 일본은 탐미주의라면 우리는 자연주의다. 중국인이 볼 때, 조선백자는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다. 손을 대고 싶어도 손을 볼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게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서 보자면, 조선백자는 막걸리 걸친 노인네 품새다. 자로 반듯이 직선을 그어야 직성이 풀리는 일본인이 볼 때, 달항아리는 불가사의 그 자체이다.
달항아리에는 의도적인 완벽주의 지향성이나 가식적인 공예 지향적 꼼꼼함이 전혀 없다. 조선 도자기 전체를 놓고 보아도 형태의 완벽함이나 마무리의 섬세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주문은 우리의 정서에도 맞지 않고, 조선 도공에게는 쓸데없는 염불소리에 지나지 않아서 나름의 도자기 완성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가?
우리가 추구한 최고의 덕목은 자연스러움, 푸근함, 넉넉함이었기 때문에 중국식의 완성 욕구나 일본풍의 기술 추종은 아예 마음속에 있지 않았다.
달항아리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달항아리를 보면, 그 순간 그 달은 당신의 것이 된다. 그것이 조선 도자기요, 그 절정에 달항아리가 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좋은 흙, 둘째는 우수한 땔나무, 셋째는 원활한 운송수단이다.
조선시대의 경기도 광주, 이천, 여주는 그런 여건을 골고루 갖추었다. 그중에서도 광주는 왕실에 납품하는 도자기를 독점 생산하던 전진기지였다. 무진장 조달되던 질 좋은 고령토와 참나무 장작을 담장이 휘도록 쌓아놓을 수 있었던, 지금의 두물머리 아래 도마리, 금사리, 분원리는 조선백자의 튼실하고 둥그런 엄마배였다. 게다가 한강을 통해 마포나루로 얼마든지 한양 지배층에 좋은 도자기를 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광주 일원에는 가는 곳마다 깨진 백자 파편들이 발끝에 차이기 일쑤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옮겨다니면서 생산되던 백자는 조선 초부터 이어져온 생명력이 일본의 왜사기가 들어오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어떠한가?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화백도 "나는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라고 극찬했다.
백자 달항아리는 겨울색과 닮았다.
그 흰 색은 눈이 부신 햇빛의 흰 색으로부터 폭설이 내린 다음날 따스한 아침의 흰 색, 엄마 젖색깔 나는 우윳빛 흰 색, 동자승 머리 위로 어른거리는 푸름을 머금은 흰 색과 닮았다.
어떠한가?
당신은 백자 달항아리의 그 아름다움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백자달항아리 국보 제309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높이 44.2cm, 지름 42.4cm
#백자달항아리
#리컬렉션 #리움컬렉션의백미
#국보309호 #이정선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세페 베르디의 초상화, 조반니 볼디니, 1886 (4) | 2023.12.07 |
---|---|
팔라스 아테나, 구스타프 클림트, 1898 (0) | 2023.11.26 |
겨울, 주세페아르침볼도, 1573 (0) | 2023.11.17 |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48 (0) | 2023.11.05 |
빈첸초 카무치니, 카이사르의 죽음, 1798 (2) | 2023.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