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이중섭의 붉은 황소,
우리의 황소를 본적이 있는가?
"내 소는 싸우는 소가 아닌 고생하는 소,
소 중에서도 한恨의 소이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느꼈던 그리움과 사랑, 몸서리치도록 지긋지긋했던 가난,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삶에 대한 투지 등을 고스란히 표현해낸 작품,
이것은 화가 이중섭의 영혼이 담긴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황소>는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인 1955년 첫 개인전에 출품되었던 오십여 점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출품작들이 대부분 1954년 통영에서 머물며 그렸던 작품들인것으로 보아 <황소> 역시 1954년 통영에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개인전이 끝난 후에 친구 김광균 시인이 출품작 중 팔리지 않은 이십여 점의 작품을 자신의 사무실에 보관했는데, <황소>도 그중 하나였다. 이후의 이력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이중섭의 소 연작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황소> 역시 소의 근육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역동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떠한가?
얼굴만 클로즈업해서 그렸는데도 심장에서 펄떡거리는 맥박소리가 들릴 듯하지 않은가?
굵은 선에서는 서예의 필법, 특히 조선 후기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송시열의 필법이 연상된다고 한다.
선 하나하나에 힘의 강약이 살아 있어 붓을 잡은 거친 손이 아직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 화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감정들이 그대로 강한 생명력이 되어 선명하게 전달된다.
<황소>에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늠름한 황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쳐들었을 때의 순간을 포착한 듯 입이 살짝 벌어져 있다.
강렬한 붉은 색조로 인해 황소의 거칠고 강인한 생명력이 극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커다란 눈망울과 살짝 벌어진 입은 우리가 늘 보았던 황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우리는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감정을 읽고는 한다. 눈을 통해 소와 교감한다. 저 순박한 눈망울을 빼고 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어떠한가?
소의 눈이 슬퍼 보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 한국인의 감정이 저 눈에 담겨 있다. 선이 굵고 우직해 보이는 황소는 누가 봐도 우리의 황소이다. 살짝 벌린 입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 과묵하고 듬직한 청년의 모습도 보인다. 거친 붓 자국과 붉은 색조를 조금만 걷어내고 보면 너무나 친근해 보이는 우리 가족의 모습,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
이중섭은 자신을 황소라 여겼다. 황소 그림을 자신의 자화상이라 여겼다. 황소는 우리의 소였고, 동시에 이중섭 자신이었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부유했던 외가의 도움으로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낸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민족주의 학교인 오산학교에 진학해 미술 교사 임용련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다.
1936년에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형 이중석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도쿄문화학원으로 학교를 옮긴 뒤에 같은 미술부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945년에 두 사람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준다.
1950년에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제주도까지 피난을 간다. 1951년 1월부터 약 11개월 동안 가족이 함께 제주도에 살았던 시기를 이중섭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떠올린다. 1952년에는 생계를 위해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장인의 부고 소식과 함께 아내의 건강 악화가 겹치면서 아내와 두 아들은 여권이 없는 이중섭만 남겨둔 채 일본으로 떠난다. 이중섭은 이듬해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지만,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없어 일주일만 머물고 다시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이 되고 만다.
어떠한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
우리는 지금 어느곳에 누구와 함께 있는가?
그곳이 바로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우리의 황소, 우리의 고향일 것이다.
#정지용 #향수 #이동원박인수
https://youtu.be/h8V3bm8ioGM
#이중섭 #황소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황소
#이건희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내손안의도슨트북 #SUN도슨트
'이중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섭 , 흰소 , 1954 (0) | 2023.10.22 |
---|---|
이중섭, 달과 까마귀, 1953 (0) | 2023.06.26 |
이중섭, 구상의 가족, 1955 (0) | 2023.04.29 |
돌아오지않는 강, 이중섭, 1956 (1) | 202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