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이중섭, 구상의 가족, 1955

풍선(balloon) 2023. 4. 2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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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보고싶은 가족이 있습니까?

1955년 화가 이중섭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서울 미도파 백화점 전시회와 대구 미국공보원 개인전을 통해 1952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만나러 갈 여비를 마련할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작품은 어느 정도 팔렸으나, 구매자가 돈을 주지 않거나 작품을 빼돌리는 통에 수익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대구에서는 출품작이 춘화아니냐는 논란까지 불거져 경찰이 철거할 것이라는 풍문까지 떠돌았다. 일본에 갈 길은 멀어지고 그의 심중은 실망과 한탄으로 가득했다. 이중섭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말수도 크게 줄었다. 낙심한 채 경북 왜관에 있는 구상의 집과 대구에 있는 최태응의 집을 전전했다.

화가 이중섭은 서울로 돌아온 뒤 이런 절망감은 결국 정신분열로 악화해 작가를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시인 구상의 가족>이라는그림은 화가 이중섭이 경상북도 왜관에서 구상 시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5년 당시 구상이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들을 거느리고 살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아들을 구상이 붙잡고 있고, 그 뒤로 부인과 다른 아들이 이 모습을 지켜본다. 화폭 위에 그려진 단란한 가족의 모습 가운데 자전거 위의 아이가 고개를 젖히고 좋아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여기 그려놓은 인물이 시인 구상이라는 사실은 작품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한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혼자서 지켜보던 화가 이중섭이 자신의 형상이 있다. 실제로 화폭의 오른쪽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있던 이중섭의 모습이 그림 속에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구도는 불균형에 가깝다. 이 그림을 보면 당시 이중섭이 처해 있던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쟁중 피난지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떠난 후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었다. 이중섭이 구상 시인의 가족들을 통해 확인한 것은 그네들의 행복하고 단란한 일상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자신의 외로움이 더 컸음이 분명하다.

어떠한가?

시인 구상의 가족들과 떨어져 앉아 있던 이중섭은 자신의 고립된 처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화가 자신은 자기가 건너다보고 있는 구상 시인 가족들과 격리된 채 정물처럼 굳어 있다. 이 특이한 인물 배치의구도는 소외된 자기를 표현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보고싶지만,
볼 수 없음에,
그리움과 절망의 연속들,
그렇게 이중섭은 신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떠한가?

당신에게는 보고싶은 가족이 있는가?
그 가족이 지금 곁에 있는가?

이 겨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당신 곁에는
당신을 응원하고있는 가족이 있지 않던가?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이중섭, 1955년, 유화, 시인 구상의 가족, 32×4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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