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죽고 정확히 1년 뒤에 고흐가 태어났고, 고흐의 어머니는 고흐에게 형의 이름 '빈센트 반 고흐'를 그대로 물려준다.
자신의 생일에 죽은 형의 무덤에 가서 우는 엄마를보며 자란 고흐는 자신이 형의 대체재인가, 혼자만으로는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고민하며 항상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고, 외로움과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두려움이 평생에 걸쳐 고흐를 따라다녔다.
이렇게 금방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또 금방 상처 받았던 고흐에게 진정한 우정을 나눌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 친구를 위해 그렸던 그림이 바로<해바라기>다.
1888년 팔리는 그림이 아닌 주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고흐는 시골 마을 아를에 노란 집을 얻어 놓고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당시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고흐와 함께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서는 화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던 차에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지원자가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폴 고갱이다. 하지만 사실 고갱이 자의로 찾아간 건 아니었다. 고갱의 아트 딜러였던 테오가 아를에 가는 조건으로 한 달에 150프랑(약 250만 원)을 주기로 했기에 돈을 위해 간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고흐는 1888년 1월에 아를로 내려와 아홉 달가까이 혼자 지내고 있던 차였기에 고갱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고 고갱이 지낼 방을 고갱이 좋아할 만한 그림으로 꾸며 주고 싶은 마음에 <해바라기>를 그린다.
고흐와 고갱은 파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고 고갱이 마음을 열었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고흐는 그렇게 일주일 동안 네 점의 <해바라기> 연작을 완성시켰고, 설레는 마음을 담아 고갱에게 편지를 쓴다.
“희망이 등대 불빛처럼 번뜩이고, 외로운 인생살이에서 나를 위로해 주네, 지금은 자네와 이런 믿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야.”
실제 두 사람이 함께 지낸 기간은 약 두 달이었다. 10월 말에 내려온 고갱이 그해 크리스마스즈음 떠났기 때문이다.
어떠한가?
파리를 떠나 빛과 색이 충만한 프로방스에서 그림의 전성기를 맞이한 고흐,
<해바라기>연작은 자신을 알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기쁜 마음을 가득담아 그림으로 그려낸 고흐의 또 다른 편지였다.
그의 말을 인용해본다.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어떠한가?
당신은 오늘 누구와 더불어 함께 있는가?
그들과 오늘을 살면서 무언가의 도움이 된다면, 당신의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고흐, <해바라기>, 1889년(아를), 캔버스에 유채, 95x73cm, 반 고흐 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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