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아무도기다리지않았다, 일리야레핀, 1844

풍선(balloon) 2023. 8. 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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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방인

가족들은 마치 낯선 이방인처럼,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남편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맞이하고 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경계심과 놀라움을,
러시아의 화가,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1844-1930)은 그려내고 있다.

농노 제도의 폐지 이후, 러시아 농민의 삶은 이미 피폐함 그 자체였다. 이에 계몽이라는 명분으로 교사, 의사, 점원, 노동자가 앞장서서, 러시아의 기반인 농민 공동체를 기초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들은  '브 나로드(v narod)'운동을 펼쳤다.

화가 레핀은 "이방인", 오랫동안 부재하던 가족이며 누군가의 급작스러운 출현과 갑작스러운 등장 그리고 긴장이 깨지지 않은 상태를 이 그림에서 그려내고 있다.

초췌한 몰골로 집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이 사람, 그는 이 집안의 가장이었던 것이다. 이제 막 수용소에서 돌아온 한 혁명가를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맞이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국가, 그 전조를 드리우던 시대의 암울함과 혼란스러움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은 신념의 빛이요, 빛의 표정이다.

짜르의 비밀경찰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영하 수십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나 바이칼호 저편 어느 유형지로 보내졌을 것이다. 오랜 유형생활은 그의 신체를 쇠약하게 했지만, 혹독한 추위도 그의 정신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림 속의 그는 무척이나 수척하고 지쳐 보이지만 형형한 눈빛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가 놓여져 있는 밝고 환한 거실의 풍경은 이 가문이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의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짜르 정부의 고위 관리를 맡고 있음직한 이 집은 아들 때문에 속 꽤나 썩였을 것이다.

모두가 잊고 살았던, 갑자기 출현한 아들로 인해 밝고 환한 거실의 한 가운데로 터질듯 팽팽한 긴장이 놓여져 있다.

문밖에서 호기심과 두려움 섞인 눈으로 기웃대는 하녀와 반은 포기한 상태에서 맞이한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로 인해 걱정스런 착잡한 표정으로 들여다 보는 아내.

반갑고도 놀라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표정, 두려움으로 낯선 이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표정으로, 여행 중이라고 믿고 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딸이 느꼈을 당혹감은 어떠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나 솔제니친이 유형지에서 소문 없이 돌아와 집으로 들어선 장면이 오버랩 된다.

어떠한가?

삶의 모습은 천만가지다.

19세기 러시아의 많은 지식인들은 차르의 전제 정치에 항거, 가정을 떠나 혁명지를 전전했다. 서로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혁명가는 대의를 위한 삶을, 고향의 가족들은 묵묵히 일상의 삶을 그렇게 서로를 잊은 듯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형태의 슬픔일 뿐이다.

작가는 그림 전체에 밝고 환한 빛을 주고 있다. 우울하고 무거운 주제의 그림이지만 그림 전체를 감싸는 밝은 빛을 보며 가족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을 기대하게 한다.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은 그래서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왼쪽문을 통하여 방 안으로 들어온 빛, 그리고 그림자, 아마도 이 빛은 빛나는 빛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빛 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WvP1g7eic0U


Ilya Yefimovich Repin, <Unexpected Return>2, 1884. Oil on canvas.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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