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발타자르 반 데르 애스트, 「과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622

풍선(balloon) 2024. 10. 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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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유한한 삶속에서의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17세기 네덜란드는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이룩했고, 부르주아 계층의 식탁은 호화로운 음식으로 가득 찼다.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는 절대 군주 펠리페 2세의 종교 탄압과 세금 인상에 반발해 1648년 독립 전쟁을 일으켜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했다.

또한 식민지 개척과 해상 무역으로 경제적 부를 창출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다. 이때 상인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의 새로운 유력 계층으로 부상했다.

부유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품격을 높이고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 이제껏 교회와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미술 시장을 기웃거렸고, 자신들이 소유한 진귀한 물건들을 그림으로 남겨 영원히 기념하려고 했다. 값비싼 외국 상품을 묘사한 화려한 네덜란드 정물화는 프롱크스틸레번이라고 불렸다. ‘호화로운 정물화’라는 뜻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는 인간의 세속적 물질욕이 얼마나 덧없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니타스는 공허함, 헛됨을 뜻하는 라틴어다. 네덜란드 정물화는 삶의 덧없음, 쾌락의 무의미,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바니타스 정물화이다.

그림 속 아름다운 꽃과 풍요로운 과실들은 잠시 동안의 짧은 삶에 대한 은유다. 자세히 보면 바구니 뒤쪽, 포도 덩굴 잎에 나비가 보인다. 바구니에서 기어 나오는 도마뱀과 중앙의 녹색 포도송이 윗부분에 희미하게 잠자리도 보인다. 맨 아래 왼쪽 모서리에는 파리 두 마리, 오른쪽 모서리에는 메뚜기 한 마리가 있다.

과일과 꽃은 유한한 시간, 곤충들은 부패와 죽음을 상기시킨다. 바니타스를 말하기 위해 쓰인 소재들인 것이다.

어떠한가?

바니타스 정물화는 16~17세기에 싹을 틔운 근대 자본주의적 정신과 중세의 금욕적 전통의 갈등과 혼재를 보여준다.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삶의 기쁨과 물질적 소비를 즐기는 동시에, 세속적 재화와 소유의 공허함 느끼며 살고 있다.

어떠한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았던 인생의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한 공허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는 삶,

죽음의 전령사가 문지방 건너 노크할 때,
우리가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서 나와 함께 같이 해 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작별을 준비하는 삶,

그러한 삶이야말로
우리로하여금 유한한 삶속에서의
공허함을 이겨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허락된
남겨진 삶을 응원한다.

#발타자르반데르애스트, 「과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622년,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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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타스 #메멘토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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