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김환기, 달 두개, 1961

풍선(balloon) 2023. 8. 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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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보슬비가 나립니다. 새벽부터 보슬비가 나린답니다. 이 비에 쑥 잎뜨고 할미꽃 정이 솟고, 보리밭 푸르러지면 노오란 나비 날 겝니다. 봄은 강남에서 온다는데 그 강남이 어딘지, 아마 우리 섬이 강남이라면 서울의  봄도 우리 섬에서 보내드린 것입니다.

환기와 동림, 둘의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혼에 세 명의 자식까지 딸린 환기를 동림의 집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환기의 집안 역시 과부인 동림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그렇지만 이런 난관이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둘의 결합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집안의 반대앞에 동림은 성을 버리고, 이름을 바꿔 새로 태어나기로 합니다.

김향안, 환기의 성(김)과 환기의 아호(향안)를 받아 변동림은 김향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아호를 그녀에게 온전히 준 환기는 수화(樹話, 나무와 이야기를 좋아해 지음)라는 아호를 다시 만듭니다.

이렇게 부부로 다시 태어난 둘은 앞으로의 삶을 우리들의 의사와 능력으로 이상적인 생활을 설계해서 실행해가기로 맹세합니다.

이들 부부의 모토는 '곱게 살자', 결혼에 앞서 함께 한 맹세이죠. 부부는 삶의 끝까지 그 맹세를 지키며 그들만의 지고지순한 세계를 창조해갑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10년 만에 백자에서 조선의 미를 발굴한 환기는 그것을 온전히 화폭에 불어넣는 표현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환기는 피난지 부산에서 호박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삼복더위로 숨이 콱콱 막히는 세 평 남짓한 그 다락방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립니다. 누구도 사주지않을 그림, 그러나 그 사실은 환기에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림은 이미 환기의 공기이자 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환기의 곁에는 그의 예술을 무한히 사랑하고 이해하며 지지했던 아내 향안이 있었죠. 환기의 예술에 함께 숨을 불어넣으며, 전시 중에도 환기가 오직 그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묵묵히 생계를 책임진 향안, 환기의 그림을 여기저기 소개하며 판매 영업까지 마다하지 않았죠.

혼자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시절, 부부는 그렇게 하나의 삶을 살아내며 견딥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던 1955년 4월, 향안은 홀로 파리로 향합니다. 환기가 파리에서 화가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떠난 것이죠. 파리에 도착한 향안은 환기의 작품 포트폴리오를 손에쥐고 파리에 있는 수많은 화랑을 두루 돌아다니며 전시 가능 여부를 타진합니다. 더불어, 향안도 미술학교를 다니며 그림을 배웁니다.

그런데 왜 그림까지 배우려 한 것일까요?

"남편이 화가인데 아내가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가정생활은 다소 절름발이 격이 되지 않을까, 부부란 서로의 호흡을 공감하는 데서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인 줄로 안다."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아내가 되어 어느새 마흔넷, 불어를 모르는 남편을 위해 각종 자료와 기사를 번역해주고, 작품의 홍보와 관리까지 도맡으며 매니저를 자임하는 아내, 해진 양말을 다시 꿰매 신으며 타지에서 환기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아내.

늦은 밤, 일이 끝나고 나서야 자기 글을 쓰고 공부하는 고마운 아내, 환기는 화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습니다.

1959년 4월,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어떤 기반도 없던 파리에서의 3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부부는 너무나 많은 것을배웠습니다. 둘의 상호 신뢰는 더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어떠한가요?

환기 곁에는 혼자였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애정, 신뢰, 존의로 언제나 변함없이 환기를 신실하게 지지해주는 향안이 있었습니다.

환기의 예술이 잘 자라도록 말없이 지켜주는 향안, 환기는 그런 아내에게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대신 백화점에 나가 일하는 아내를 기쁘게 하고자 환기는 하루 종일 서서 자신의 예술세계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지점까지 가기 위해 모든 혼을 아낌없이 불사릅니다.

그렇게 뉴욕에서 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1970년. 한없이 점을 찍고 또 찍길 반복하던 쉰여덟 화가의 화면은 어느새 달항아리처럼 온전히 무심(無心)해졌고, 순수한 코튼 위에 무한한 '점의 우주'를 창조하기에 이릅니다.

스무 살에 그림을 시작한 사내는 40년후 오직 푸른 점으로 가득 찬 '점의 우주'를 짓는 무심한 창조자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떠한가요?

뉴욕에서 환기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매일 신경통과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다리가 무거워 걷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영감이 샘솟듯 터져 나오며 예술세계가 활짝 꽃피는 이 시기를 절대 놓칠 수 없기에, 환기는 매일 쉼 없이 점을 찍는 강행군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환기는 자신의 생명과 예술을 바꿉니다.

매일 하루 종일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온 정신을 집중한 채 점을찍는 행위. 그것은 그의 목과 척추에 심대한 손상을 입히고 말았습니다.

환기의 상태가 악화되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소식이었죠. 알고 보니 병원이 실수로 낙상방지장치를 해두지 않은 탓에 환기가 그만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떨어지며 머리에 충격을 받아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고, 꿈을 이루고 고국으로 향하겠다던 환기는 이렇게 갑자기, 한순간, 너무 허무하게 향안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어떠한가요?

작업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환기의 물감을 보던 향안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환기가 가장 사랑했던 그 행위를 차곡차곡 이어가며, 향안은 더 많은 사람들이 환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뉴욕, 파리, 브라질, 한국 등 국경을 넘나들며 전시를 엽니다.

환기재단을 설립해 환기의 작품과 예술정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고국에 보내고 싶었던 환기의 꿈을 이어 1992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엽니다. 그리고 2004년 비로소 환기 곁으로 향합니다.

어떠한가요?
향안의 말을 전해봅니다.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다. 곧 지성(知性)이다."

60년 전,
곱게 살자고 약속했던 부부,
그 곱디고운 부부의 숨결들ㆍㆍ

오늘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달두개, 김환기, 1961, 130×193㎝,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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