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당신에게는 무엇입니까?
김환기는 뉴욕시절 단색으로 점 하나를 찍고 네모꼴로 둘러싸는 것을 서너번씩 하며 물감이 번져나가게 하기를 수행하듯이 수천 번 반복한다. 무엇이 이러한 수고와 인내를 가능하게 했을까?
이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서양의 모노크롬처럼 보이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담아내고자 한 건 개념적인 게 아니라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고향의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는 삭막한 뉴욕에서 고향의 자연 산천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산이 없어서 마천루의 고층 건물 위쪽으로 해가 저무는 삭막한 뉴욕에서 낭만을 잃어버린 그가 의지할 곳은 오직 밤하늘의 별이었다. 밤하늘의 별만큼은 고향에서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의 작업실에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종신수처럼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점으로 대신했다. 그의 일기장을 보면 당시 그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친구의 편지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김환기의 점 시리즈에서 점은 바로 별을 그린 것이며, 물감을 칠하지 않은 하얀 선을 남겨 산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가 찍은 점이 별이라는 사실은 그 무렵 그가 가장 좋아하며 애송했던 #김광섭 의 #저녁에 라는 시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삭막한 뉴욕에서 그는 이 시를 낭송하며 어린 시절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누워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세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떠한가?
김광섭 시에서 별을 본다는 것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객체인 별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별이 먼저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 맞춤이고, 이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접화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치열한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은 바로 인간과 자연이 정답게 만나는 사랑과 화합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짧은 만남은 새벽의 여명과 함께 헤어져야 하고, 일상에서 다시 고독을 느끼며 만남을 그리워하게 된다.
어떠한가?
별은 자연의 상징물이고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듯이 별과 설레는 만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충족될 수 없는 운명적인 그리움은 김환기 예술의 일관된 주제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고향은 물리적으로는 한국의 전라남도 신안 섬마을 안좌도이지만, 더 정확히는 어린 시절 푸른 자연과 물아일체로 하나 되는 기쁨을 안긴 고향의 자연이다.
1969년 미국에서 고향에 있는 안좌초등학교에 보낸 엽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우편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우리 섬에 들어가게 될 때는 연말이나 1969년 새해 아침이 될 것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우리 아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고향을 떠나서 살았고 또 외국에 살고있으나 내 고향 내 모교를 한번 잊어본 적 없습니다. 까마득히 40년 전 공부하고 뛰놀던 우리 모교,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운동장 북쪽 모퉁이에 내가 심었던 소나무는 그대로 서 있을까?얼마나 컸을까? 선생님들 얼굴, 아이들 얼굴 뵈온 적 없으나 고향을 생각하고 모교를 생각할 적마다 그리운 얼굴들이 선하게 떠올라요・・・・・… "
어떠한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정한과 그리움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깊은 감동은 우리가 삭막하고 세속적인 삶 속에서 잃어버려가고있는 우리들의 본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떠한가?
혹시나 당신은 한 세대 또는 두 세대(世代, Generation)전 서로 다른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른 봄날 모여, 각자의 고향을 이야기하고 가슴뛰는 청춘의 우정들을 시작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많은 시간을 뒤로하고 서로의 자리에 그렇게 서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그 오랜 시간을 치열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정답게 만나서 우정과 사랑의 시낭송회를 준비하던 설레임을 가지고 말이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한다고하지만, 당신에게 그러한 우정의 추억이 있다면, 당신으로인하여 누군가는 고향을 느낄 것임을 분명하다.
고향,
당신에게는 무엇입니까?
https://youtu.be/pxWa1djr3yQ
#김환기(金煥基), 1970년, 유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어디서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
#회화로구현된백자달항아리의멋
#최광진 #한국의미 #기교넘어의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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